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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Mar 11. 2024

요즘 남자는 다 이런가요?

요즘 아빠의 육아법

딸이 수업 때문에 주말 동안 집을 비우는 관계로 딸네 집에서 손자와 함께 잤을 때의 일이다. 그날이 금요일 아침이었나 보다.


큰 손자는 유치원에 작은놈은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라 둘 다 도시락이 필요한데, 다행스럽게도 큰 놈은 학교에서 점심을 주는 날이란다. 작은놈 도시락은 집에서 챙겨가야 하는데, 밥과 국을 싸줄 수는 없고... 무얼 싸줄지 나는 딱히 생각이 없었다.


아침이 되니 손자들이 일어났고, 동시에 사위도 잠에서 깨어 주방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이미 머릿속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저 없이 아침을 준비한다. 토스터에 와플을 두 개 넣고, 사과를 하나 깎아 우유와 함께 손자들에게 아침으로 먹인다.


손자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사위는 작은놈 도시락을 준비한다. 끊임없이 조잘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받아주면서... 

이런 광경이 낯설고도 신기한 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60 평생을 사는 동안 한 번도 실제로 볼 수 없었던, 말로만 들어왔던 요즘 가정적인 남자의 모습이구나 생각하며 낄 타임을 몰라 눈만 굴리고 있었다. 이들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테니 섣불리 개입할 수는 없다.


내가 무얼 하든 상관없이 사위는 계속 움직였다. 식빵에 땅콩버터와 블루베리잼을 바르고 가장자리를 잘라내더니 다시 한 입 크기로 자른 다음 도시락 한 칸에 담는다. 치즈스틱을 작게 잘라 한켠에 넣고, 포도를 반으로 갈라 다른 한 칸을 마저 채우고는 완성된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물병도 챙겨 넣는다. 그리고 스낵이라며 젤리 봉지를 넣어준다. 한 뼘의 공백이나 서두름 따위 없이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한 번에 뚝딱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하루 이틀 해오던 것은 아닌 모양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jun yang님의 이미지 입니다.


와중에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는, 얼른 양치하고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는 먼저 나가야 하는 작은놈에게 옷을 입힌다. 능숙한 솜씨가 마치 노련한 기술자 같다. 둘째 손자의 놀이방은 사위의 직장과 가까워 늘 출근하면서 데려다주고 간다. 큰 손자는 삼십 분 후에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태워 보내면 된다. 사위는 큰 손자에게 '학교에 잘 다녀와. 이따 저녁에 보자~‘하고, 나에게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작은놈을 태우고 부르릉~ 출근했다.


요즘 남자는 다 이런가?


채 1시간도 안 되는 동안 정말 능숙하게 아이들 등교 준비시키고, 본인 출근 준비하는 사위, 꽤 멋져 보였다. 우리 딸이 결혼을 잘했네!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이들 아침이나 도시락 준비는 모두 혼자 도맡아 했던, 옛날 사람인 나는 그저 속으로 놀랄 뿐이었다. 나와 똑같은 옛날 사람인 남편(차려주는 밥 앉아서 받아먹고, 먹은 상 그대로 둔 채 출근했던, 그리고 그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의 남편)과 오버랩되면서 한동안 서있는 자세 그대로 사위가 나간 현관을 쳐다봤다.


산뜻한 문화충격에 와~ 감탄을 하고, 근사해 보이는 사위를 칭송하면서 나간 뒷자리를 정리한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가서, 

안방 침대 옆에 사위가 마시다 만 물컵을 치우고, 바닥에 벗어던진 양말짝 들어 올려 빨래통에 담는다. 노트북 옆에 버려진 크리넥스를 치우고 여전히 켜져 있는 전등도 끄고 나온다. 큰 손자방 문 앞에 널브러진 풀업 기저귀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고, 마시던 물병 낚아채 1층으로 내려온다. 


사위가 마시던 반쯤 남은 커피잔이 소파 위에 위태롭게 놓여있다. 얼른 치우고, 시선따라 주방 아일랜드 위를 쳐다본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난 자리에 빵 부스러기들이 난무하고, 잼도 한두 방울 떨어져서 끈적거린다. 아이들이 밤새 입었던 수면복이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떨어져 있길래 거둬다가 빨래통에 넣었다.


지하는 괜찮겠지? 혹시나 해서 지하로 내려간다.

펠로톤 실내자전거 옆에 먹은 국 대접 하나, 밥공기 하나, 물 컵이 그대로 있다. 엊저녁에 아이들 재우고 나서 운동한다더니... 고춧가루 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빈 그릇을 들고 올라오며 길게 숨을 내쉰다. 휴~


요즘 남자들은 다 이런가?


정리할 줄을 모른다. 머물던 자리 찾아가며 치우느라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옛날 사람인 내 남편, 예나 지금이나 정리 하나는 잘한다. 일어나자마자 침대 이불 탁탁 털어 정리하고, 한번 사용한 수건은 반드시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쓰고 난 물건은 제자리에 각 잡아 돌려놓고, 설거지 중에도 물기 닦아주느라 옆에서 바쁜 남편, 무지 깔끔하다. 


옛날과 요즘을 잘 섞은, 완벽하게 좋은 남자는 왜 없는 걸까!


나의 세대는 깔끔했고, 

나의 자녀 세대는 가사분담이 완벽하니, 

나의 손자 세대는 깔끔하면서 가정적인 진정한 요즘 남편이 나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데, 이게 세대를 걸쳐서 진화해야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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