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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Feb 29. 2024

초보 엄마의 오락가락

너는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혼 좀 나야 돼!

어린이집(데이 케어)을 졸업한 큰 손자는 올해 9월 유치원(킨더가든)에 입학했고, 그 이튿날부터 딸과 손자의 너울 같은 희비쌍곡선이 시작됐다. 


스쿨버스에 손자를 태워 보내고 들어온 딸은, 혹시 이놈이 유치원에서 울지는 않는지, 오줌을 참다가 싸버리는 건 아닌지, 친구들과 소통은 잘하는지 걱정이 한가득이 되어 오전 내내 불안한 낯빛이다. 


손자가 등원하고 두 시간쯤 지나서 선생님이 사진을 보내왔다. 의자에 앉은 손자는 씩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딸은 긴장을 풀며 말을 한다.

'다른 애들은 키도 크고 말도 잘하고, 벌써부터 선생님한테 질문도 하고 그러는데, OO 이는 생일도 늦고, 키도 작아서 애들한테 치일까 봐 걱정됐는데... 그래도 적응을 잘하나 봐. 다행이야.' 하더니 그제야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후 3시가 되어, 작은놈을 유모차에 태우고 딸과 함께 큰 손자를 데리러 갔다. 버스가 오고 아이들이 내리는데, 손자 녀석은 내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지 일어날 줄을 모른다. 급기야 딸이 버스 안으로 올라가 손자를 데리고 나왔다. 어리벙벙한 손자는 목소리를 겨우 내어 속삭이듯 제 엄마에게 말을 한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평소와 달리 잔뜩 주눅이 든 손자의 모습에 딸의 가슴이 다시 미어진다. 나를 보고는,

'애들 틈에서 지쳤나 봐, 어휴..... 엄마들이 자식들 군대 안 보내려는 마음이 이해가 돼. 어우~ 마음 아파서 나도 못 보낼 거 같아' 


제 키만 한 가방을 등에 메고 제 키보다 더 큰 또래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긴 시간을 보내고 온 손자는,  제 엄마를 보고 마음이 놓였는지 서서히 얼굴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도 명랑해졌다. 딸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손자의 가방을 받아 들고, 나는 작은놈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Photo by Lisa Boonaerts on Unsplash


'어! 도시락이 그냥 있네, 물도 그대로야! 흐엉~ 도시락을 밑에 넣어놨는데 못 찾았나 봐, 그냥 있어. 스낵도.... 흐어엉 불쌍해... 뚜껑을 못 열었나 봐. OO아~ 이거 스낵 박스 뚜껑 못 열었어? 도시락은 여기 넣었는데 못 찾았어? 이거 봐 엄마가 여기 넣어놨잖아.... 그럼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 물도 못 마시고? 아이... 속상해! 어떡해....' 

여태껏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고픈 손자를 안고 딸은 거의 울 지경이 되었다. 와중에 가방을 열고 닫으며 도시락의 위치를 다시 알려주고, 스낵 박스 여는 법을 다시 지도하지만 마음은 이미 쓰리고 아프다.

 

손자는 도시락을 집에서 먹으며 '미스터 인크레더블'을 시청한다. 우유와 샌드위치를 냠냠 먹고 말린 사과조각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잘 먹는 손자와 달리, 오후에 운동을 하겠다던 딸은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운동할 생각도 않고 큰 손자 옆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 밥 먹고 있을 때 도시락을 찾지 못한 어린것이 물도 못 마시고 가만히 있었을 장면을 상상하며 제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그러고 앉아있는 딸에게 내가 한마디 했다.

'엄마가 강해야 애들도 강해진다. 처음이니까 저도 긴장했겠지. 차차 괜찮아질 거야.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딸은 잠시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르더니 손자의 손을 잡고, 

'OO아! 우리는 강해져야 돼! 여기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돼! 우리 강해지자 응!' 

손자가 알아들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야 딸도 운동하러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오늘은 딸이 첫 출근하는 날이다. 사위도 출근 준비를 한다. 

딸은 손자에게 옷을 입히며, 작은놈에게 먹일 이유식을 내게 알려주고, 저도 옷 입고 준비하느라 그야말로 왔다 갔다 북새통이다. 마침 비가 와서 손자에게 우비를 입으라 하는데, 손자는 안 입겠다며 버틴다. 딸이 오후 날씨를 체크하더니 안 입는 게 낫겠다며 입혀놓은 것을 벗으라 하고, 장화 대신 운동화를 신으라 하니 손자는 장화를 신어야겠다며 투정을 부린다. 나갈 시간이 다 되어 마음이 더 분주해진 딸이 손자 놈을 향해 소리친다.


'너는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혼도 나고, 정신 좀 차려야 돼! 왜 학교에 가야 되는지 이제 알겠어, 군대도 갔다 와야 돼! 아직 멀었어.'


하룻밤 새에 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어제는 짠하고 불쌍하다더니, 오늘은 혼 좀 나야 된단다. 오후에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초보 학부형 엄마의 감정이 다시 너울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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