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여전히 낯설지만
음식이라 하기엔 적당하지 않지만 어쨌든 먹는 것이니 그냥 음식이라 해야겠다. 20여 년 전 캐나다에 와서 몇 가지 낯설었던 먹거리들이 있었는데 블루베리, 서양 배, 셀러리가 그들이다. 지금은 한국에도 블루베리가 흔하지만 당시에 해외에서 들어오는 과일이라곤 바나나, 키위, 오렌지와 파인애플 정도였다.
1. 블루베리
처음엔 내가 사 먹기보다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당최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크기도 자잘한 것이 이것도 과일인가 싶었다. 생김새는, 어린 시절 들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훑어서 먹었던 까마중을 닮았다. 맛도 까마중처럼 들척지근해서 영 손이 가질 않았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1년 후쯤 우연히 다시 먹게 되었는데, 먹을만했다. 그리고 점점 그 맛이 익숙해지다가, 이제는 블루베리가 익는 8월 여름이면 농장으로 블루베리를 따러 간다. 록앤록컨테이너를 들고 가서 따면서 먹고, 따와서 집에서 먹고, 냉동보관했다가 나중에 또 먹는다. 이제는 블루베리가 들어간 것이라면 머핀, 도넛, 아이스크림, 요플레, 잼까지 다 맛있다. 얼마나 좋으면 마당에 블루베리 나무를 사다 심을까! 이번 여름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2. 서양 배
서양 배는 최근에 익숙해졌으니 20년 걸린 셈이다. 배는 당연히 한국 배지! 하며 서양 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는(익숙해진) 것은 레드 바틀렛이다. 은은한 향에 맛은 시큼 달큼, 육질은 부드러운 키위 같다. 한국의 배처럼 사각거리며 씹히는 맛은 없으나 익숙해지니 이것도 맛있다. 그래서 배나무도 뒷마당에 한 그루 심었다. 봄에 꽃이 피더니 지금은 작지만 제법 배 모양 비슷한 걸 달고 있다. 올 가을에 하나 정도는 먹을 수 있으려나.
3. 셀러리
향이 너무 진하고, 억센 섬유질 때문에 싫어했다. 몇 년이 지나고, 변비 예방 목적으로 마요네즈에 찍어서 먹어보니 뒷맛이 개운하고 좋았다. 그렇게 서서히 향에 익숙해지다가 오이와 청경채를 같이 넣고 겉절이를 해봤다. 미나리처럼 향긋한 것이 씹히는 식감도 좋고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스파게티에 넣으면 기름진 맛을 잡아줘서 좋고, 스테이크와 구워 먹으면 날 선 식감도 반으로 죽고 향긋하니 좋다.
또, 셀러리를 삶은 후 볶으면 머위나물 맛이 난다.
셀러리를 일정한 길이로 자른 후 끓는 물에 데쳐서 2-3mm 두께로 자른 다음, 올리브오일을 넣고 볶다가 소금 후추 간을 하고, 들깨가루를 섞어주면 머위나물과 같은 맛이 난다.
머위나물을 먹어본 나는 가끔 그 맛이 그리워서 한국마트에 갈 때마다 머위를 찾아보지만, 말린 토란대는 있어도 머위는 없다. 대신 셀러리로 만들어서 식탁에 올리는데, 남편은 샐러리향을 싫어하고, 아이들도 굳이 애써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 독차지다. 그러면서 셀러리와도 친해졌는데.... 아! 이것도 뒷마당에 심어야 하나?
오랜 세월을 살면서 낯설었던 음식에도 익숙해졌건만 마음은 아직 이방인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좀 섞이는 듯했다가, 교회를 다니면 또 좀 섞이는 듯하다가, 이도 저도 그만두면 익숙했던(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사회가 다시 낯설어진다. 억지로 섞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뭔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음식처럼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려야 하나. 익숙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한국, 내 나라의 먹거리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