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라는 종교

by 김하정

즐겨 찾는 홈트 동영상을 클릭하고 요가 매트를 펼치는 사이에

김혜자 님이 "소녀들에게 채워진 조혼 목걸이를 끊어주세요.

한 달에 4만 원, 우리가 할 수 있잖아요?" 합니다.

여덟 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이야?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도

내 생활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어 빠져나갈 궁리부터 합니다.

내고 있는 봉헌금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걸까? 필요한 곳에 써주시겠지.

그렇다면 저곳에도 도움이 갈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건너뛰기를 누릅니다.

마음까지 건너뛰지는 못해서 요가하는 동안에도 족쇄처럼 채워진

조혼 목걸이가,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눈에 밟힙니다.

돕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른 아침부터 죄짓는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양심이라는 종교가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을 앞서갑니다.

양심과 신앙이 살아가는 데는 참 불편합니다.

내 생활에 앞서 그저 내놓으라고만 하니 불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없으면 내 삶의 좌표조차도 흔들릴 것 같습니다.

적어도 기준점임에는 분명하니까요.

나에 가치관에 반하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 견제해 주는 잣대가 돼주니까요.

가끔은 종교조차도 돈이 없으면 지속할 수가 없겠구나 하면서도

주일마다 일주일 어치의 잘못을 고하러 갑니다.

'이건 제 생각에도 잘못됐습니다. 고쳐보겠습니다' 하는 거죠.

'그래, 지켜보겠다' 사인받고 올 때만큼은 다시 채워갈 의지로 가득 차게 되니까요.

돌아봄이 없는 전진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습관처럼 걷는 것에 불과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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