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김하정

큰 사거리에 현수막을 걸 수 있는 거치대가 설치돼 있어도 순번 기다리느라 시간이 걸려서일까

아니면 비용 절감 차원에서일까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강강술래하듯 둘러칩니다.

색깔도 내용도 각양각색입니다.

장소 가릴 수 없을 만큼 절박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제오늘 일 아닌 변해도 변하지 않아도

그만인 원성만 자자한 시장 같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중차대한 일일망정 심드렁해져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선거철이 아닌데도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비방에 국정 보고서에나 있어야 할 업적들까지

비집고 들어와 공약 한 건 올렸으니 다음 차에도 기약을 해달라는 건지 저마다

자기 영역 확보 차원인 것만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한쪽에 얼굴까지 각인시키는 건 또 뭐지 싶습니다.

그 공약을 전제로 투표한 만큼 선불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후불제로 얘기합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살아서 현수막에 걸리는 건가 싶습니다.

생계가 걸린 개업 현수막은 오히려 거치대에 걸립니다. 그러지 않으면 단속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유난히 정치 관련한 건 아무 데나 걸려 있어도 단속이 되질 않으니 아이러니입니다.

해결책을 찾겠다는 건지 고발하겠다는 건지 정확한 취지를 알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일단 쏟아놓고 보자는 성토대회 같습니다.

인터넷 세상은 내가 관심 있으면 들어가고 관심 없으면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선택의 권한이라도

있는데 이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볼 수밖에 없는 시각적 폭력 같습니다.

누군 몰라서 그러냐고, 오죽하면 그럴까 얘기해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라고 하겠지만

모든 문제를 거리로만 끌고 나오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없는 곳은 없겠지만 논의될 곳에서 논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요구 조건을 일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정확히 어디일지, 있긴 한 건지 의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 하는 것으로 억울할 일도, 자화자찬 내세울 일도 없는

현수막이 필요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하지만 함께 가는 세상에 문제가 없을 순 없어서

최소한 손들어 발언권을 갖고 나서 의견을 제시하듯 거치대 있는 곳에 정식으로 내걸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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