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우리를, 부모를 주간으로 그리워해줄까 아니면 월간, 연간으로 그리워해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 벌써부터 '할까'가 아니라 하기 싫은데 '해줄까'로 시작부터 비굴해지고 있네요.
아이들에게 미리 말합니다.
엄마 아빠 늙고 시골 변방으로 물러나 있게 되더라도 너희 사회생활할 때 의무감으로 전화하지 마라.
모든 결정에서 열외 시켜놓고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네 시간에
전화할 때 됐다 싶어 형식적인 전화하지 마라. 합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잊지 않고 전화하는 것만으로 좋은 거 아니냐 한다면 그것도 폭력이다 했습니다.
죽었나 살았나 그야말로 안부 전화는 내가 안 받는다.
그저 퇴근길에 모퉁이를 돌다가 어느 가게에서 무심코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때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다 갑자기 엄마 생각나 전화했어 하면 그보다 좋을 일이 어딨겠니!
마음이 삭제된 의무감으로 하는 전화 내가 사양할 거야.
연간이어도 좋으니 마음이 움직인 전화면 좋겠다 했습니다.
이마저도 내가 아직 젊어서 자존심 지키려는 건가 싶긴 하지만 그것만큼은 지켜가고 싶습니다.
그것마저도 욕심이다 마음 없는 전화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면 어른 하기 싫어집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마음의 일은 똑같은데 그것마저도 참아야 한다면 어른 하기 싫습니다.
서운해도 안 서운해야 하고 아파도 안 아픈 척해야 어른이라면 어른 안 하고 싶어집니다.
본래 의미 없는 삶에 나름의 의미 부여하며 사는 게 삶이고 인생인데
그 게 지켜지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연명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은 외롭지 않으려고 용쓰는 게 아닌
의미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고 그로 인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이렇다 할 직업도, 이쯤이면 됐어 할 만큼 인생을 잘 꾸려온 것도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내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고, 지켜나가는 과정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