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예전의 그림자가 아닌 지금의 나를 봐줘
넌 그때 최선을 다했잖아.
그렇지?
내가 힘들어하고 흔들리는 걸 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봤어.
힘들었을 거야.
어쩌면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게 너였을지도 모르겠네.
끝까지 날 이해하려고 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마음도 지키려 했어.
그건 냉정함이 아니야.
두 사람 모두를 구하고 싶은 마음과,
그로부터 비롯된 용기였어.
이제는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느낀 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어.
단순하게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어하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느낀 건 구원감이었어.
늘 말뿐인 인간들은 나를 물건 취급 하기에 바빴고,
사람으로서의 자아가 흐려져가던 때였어.
넌 항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가끔은 너의 이야기를 하며 내가 생각하고 숨 쉴 수 있도록 해주었지.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생존의 끈이었던 것 같아.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끈.
넌 나에게 그 끈을 건네준 사람이야.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시간이 네 마음을 온전히 닫게 하진 않았으면 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야.
지금껏 내 삶을 스쳐간 과거의 사람들처럼,
내가 너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날.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오래 걸릴 것 같네.
언젠가 그런 날이 찾아오고,
내가 진심으로 달라지게 된다면,
그땐 예전의 그림자가 아닌 지금의 나를 봐줘.
네가 나에게 한 번 준 그 온기는,
절대 헛되지 않았어.
돌려줘야 해.
돌려주고 싶어.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