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순간
내가 생각해도 이젠 너무 지겨운 말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집이 팔리지 않았다
지난 4월 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덜컥 계약부터 하고 이미 늦었지만, 서두른답시고 내놓은 게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우리 가족과 짐이 빠져나오고 공실이 된 지는 오늘로 딱 2개월이 됐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새로운 해가 바로 뒷덜미에서 쫓아오고 있는 올해의 끝자락인데, 아직까지도 이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거라고는 진짜 진짜 생각지도 못했단 말이다.
사실 얼마 전 집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했다. 그런데 가격을 너무 '후려쳤다.' 인터넷 부동산 매물에 올라와 있는 가격은 어디까지나 '호가' 일뿐 충분히 협상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겠지만, 익명의 누군가가 제시한 금액은 '협상 가능'의 수준을 넘어선 거였다. '호가'의 10%도 넘는 금액을 댕강 깎아버린 금액으로 사겠단다. 생각지도 못한 가격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우리가 혹할 만한 조건이 있긴 했다. 보름 이내로 잔금까지 모두 치르겠다는 거였다. 그날 남편과 나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천만 원 손해를 보고서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팔아버릴 것인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진정한 임자를 기다릴 것인지. 사실 남편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압박감에 팔기를 원했지만, 이번에도 순전히 내 고집으로 '그 가격에는 안 되겠소'를 외쳤다. 아무리 우리가 매달 이자를 감당하느라 허리가 끊어지지만 그건 몇 개월 이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고생을 덜기 위한 값을 비싸게 치러야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결론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다시 세월은 흐르고 우리의 고통은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새집에서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는커녕 가슴에 돌덩이를 매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천근만근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걸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냥 멍하니 걷고 싶었다. 뚜렷한 목적이 없더라도 몸을 굴려야 그나마 버틸만한 순간이었을 거다. 그러다 붉은 기운이 느껴져 하늘을 올려다 보고 걸음을 멈췄다.
4시 53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지는 순간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5시 언저리다.
한참을 바라본다. 느리지만 빠르게, 티는 안 나지만 알아볼 수 있게끔 달라지는 주황빛은 딱딱했던 가슴을 노곤노곤하게 풀어준다. 그 누구의 위로 한 마디보다 따뜻하다.
집에서도 그 시간 햇살의 끌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방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홀린 듯 저절로 발길이 향한다.
방안에 들어서면 포근한 햇살로 온통 물들어있다. 구석구석 햇살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아침 일곱 시 햇살의 주황빛은 깊고 진한 것이라면 오후 다섯 시는 은은하게 빛이 난다.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은 눈길이 닿은 이상 단 몇 초라도 홀린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핸드폰 사진 어플 속 햇살 사진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도 그 시간의 것이다.
열세살인 큰 아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1월, 지는 해를 보러 서해바다를 찾았다. 그날 아이의 일기는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수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거다.
'해가 바다의 간식처럼 보였다. 왜 해가 바다의 간식처럼 보였냐면 바다가 해를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해를 꿀꺽 삼켰던 것처럼, 나 역시 햇살의 기운을 삼키며 위안을 얻는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온화하게 위로를 건네는 빛,
내겐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