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동네 탐방
윔블던(Wimbledon)으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윔블던은 내가 런던에 살 때 지냈던 동네로 런던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하철 District line의 서쪽 끝 종착지이고, 런던 외곽인 Greater London으로 가는 열차가 멈추는, 런던과 외곽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런던의 우편번호 앞자리를 보면 센트럴 런던을 중심으로 해당 동네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을 알 수 있다. 이 도시가 처음인 사람들도 지도를 보지 않아도 내가 가려는 동네가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첫 숙소인 햄스테드는 런던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편번호 앞자리가 NW3 (North West)로 시작한다. 내가 살았던 윔블던은 런던의 남서쪽에 있어서 SW19 (South West)이다. 이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SW19이라는 글자만 보아도 마음이 설렌다.
데보라 아주머니댁에서 체크아웃한 후 윔블던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서 햄스테드 동네를 산책했다.
좁은 골목과 넓은 골목 여기저기를 걷다가 마주친 동네 공동묘지. 따로 으슥한 곳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정말 길을 걷다가 오른쪽을 보니 공동묘지 입구였다. 181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벌써 200년이 넘게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장소가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보니 마치 평범한 이웃의 공간을 보는 것 같아서 '묘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조금은 덜했다.
영국의 빨간 우체통은 의외로 길에서 쉽게 마주친다. 이벤트가 있으면 편지나 카드를 보내는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편지를 수거하는 주기도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매일이다. 영국 우체국의 공식 명칭은 로열 메일 (Royal Mail)이다. British mail이나 UK mail처럼 국가명을 사용하지 않고, 왕실을 의미하는 Royal을 사용하는데, 영국의 우편 시스템이 1516년 헨리 8세 때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사용하게 되었음에도 서비스 명칭은 여전히 역사적 이름 그대로 Royal Mail이다.
오후 3시가 넘어 데보라 아주머니댁을 나섰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Black Cab의 충격적인 택시비 때문에 이번에는 Uber를 타고 윔블던으로 이동했다. 비용도 더 저렴했고, 다행히도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 짐이 많음에도 편하게 이동했다.
다양한 건축물이 있거나 계획이 잘 된 도시를 여행할 때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게 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이색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해서이다. 거기에 오늘은 날씨도 도왔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 어딘가의 런던 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그래도 햇살이 내리쬐어서 한층 더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새순이 돋아나서 연두색으로 변한 가로수들 사이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교통 표지판이 생동감을 더한다. 런던의 교통 표지판을 보다 보면 종종 친절한 안내 문구가 적혀있는 표지판을 만날 때가 있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에게 우선권이 있으니 양보하라'는 이 표지판도 그러하다. 이런 건 표지판이 없어도 운전자들이 상황에 따라 알아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조금 더 다툼 없는 운전을 위해 만들어진 표지판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드디어 도착한 윔블던. 오늘부터 열흘 간 내 방이다. 3층 꼭대기인데, 영국은 우리나라 1층을 Ground floor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나라 4층에 위치한 공간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방은 짐을 가지고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든데, 막상 올라오면 방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 고단함을 잊게 한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오설록 말차를 탄 말차라떼를 마시며 창밖 구경을 했다.
윔블던은 윔블던 빌리지 (Wimbledon Village)라는 커머셜 한 거리가 있고, 윔블던 커먼즈 (Wimbledon Commons)라는 넓은 잔디 공원과 숲이 우거진 윔블던 파크 (Wimbledon Park)가 있어서 사람과 자연이 너무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활기차면서도 한가로운 동네다. 나는 햇살이 내리쬐는 윔블던의 따스한 풍경을 좋아한다.
이곳을 떠난 지 9년 만에 다시 돌아오니 뭉클한 마음이 올라왔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식량을 구하러 근처에 있는 큰 슈퍼마켓인 Waitrose에 갔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유럽은 어떻게 실생활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지 궁금했었다. Waitrose와 같은 슈퍼마켓에서는 진열된 제품이 최대한 많이 팔릴 수 있도록 과일별 레시피를 매대에 소개해 놓았고, 남은 식재료를 버리지 않도록 자투리 식재료 활용법도 소개해 놓았다. 또 다른 코너에는 "Too Good To Waste"(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잖아요)라고 해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들을 모아서 할인을 하고 있었다. 야채나 과일, 고기와 같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바로 데워서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과 샌드위치들도 있어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기 좋았다.
제품 패키징에서도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들이 돋보였다. 내가 산 우유는 종이로 되어 있어서 이 제품을 구매하면 기존 플라스틱 케이스 제품보다 70%의 플라스틱을 감소할 수 있다고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환경에 얼마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디자인도 예쁘고 가격 경쟁력도 있어서 오늘의 우유 원픽이다!
Waitrose 슈퍼마켓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유통 브랜드인 존 루이스(John Lewis)는 아무 브랜드나 플라스틱 공병 5개를 가져오면 추가 할인 바우처를 제공한다.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환경 이벤트는 봤지만, 유통회사 차원에서 브랜드 관계없이 모든 공병을 수거하는 이벤트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브랜드가 다양하다 보니 이렇게 수거되는 공병에 사용된 플라스틱도 제각각일 텐데 어떻게 재활용 처리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영국은 기업과 소비자가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행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계속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