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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일상

Harrods 백화점과 Wimbledon 산책

by Sue

런던의 날씨는 늘 그렇듯 예측불허다. 길을 걷던 중 갑자기 비가 와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탄 지 5분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비온 후의 풍경이라도 즐겨보자 싶어 마침 비어있는 2층 데크의 맨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나라의 2층짜리 광역버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2층 버스도 맨 앞자리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비가 온 후 맑게 개인 런던의 풍경이 깨끗한 공기와 만나서 그런지 도시가 선명해졌다.

런던에서 근무할 때 나를 많이 챙겨주신 매니저님의 선물을 사기 위해 Harrods 백화점으로 향했다. 1905년에 오픈한 Harrods은 영국에서 가장 럭셔리한 백화점 중 하나인데, 2010년부터는 카타르의 투자회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오래된 영국 회사나 단체, 건물들을 중동의 오일머니 사업가나 회사들이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렇게 소유주가 바뀐 브랜드나 기업이 내가 알고 있는 곳이면 왠지 모르게 아쉬운 느낌이 들고는 했다. 뭔가 역사가 바뀌는 느낌이랄까..?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방문한 Harrods의 외관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있는 무언가를 보면 이제는 고마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Harrods도 그렇고, Selfridges도 그렇고, 런던의 백화점 내부는 브랜드별로 공간은 있지만 벽으로 막혀 있지 않다. 1층 (영국의 Ground Floor)에 위치하고 있는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매장도 벽으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백화점 5층에 위치한 서로 붙어 있는 여러개의 신발 매장같다고 해야할까?

미로처럼 되어 있는 매장들의 이곳저곳을 지나 쵸콜릿이 있는 식품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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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쵸콜릿을 사러 갔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여러개의 도시락 표지판 사이에 적혀 있는 Korean Beef Salad 였다. 한국식 소고기 샐러드?! 우리가 소고기를 샐러드로 먹었었나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오늘 점심은 이걸로 먹기로 했다.

집에 와서 포장을 열어보니 채썬 당근과 김치, 반숙 달걀, 오이와 적당히 익힌 소고기가 하얀 쌀밥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함께 들어있는 소스는 묽은 겨자맛이 났다. 신선한 조합이었는데 맛있었다. 무엇보다 랍스터 시저 샐러드, 치킨 볼, 새우 누들 샐러드와 같이 재료의 이름으로 된 음식명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Korean이라고 이름 붙어 있는 샐러드가 있다니 뿌듯했다. ㅎㅎ


오후에는 이모와 Wimbledon 근처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영국의 동네를 걸을 때마다 느끼는 소소한 재미중에 하나는 집주인 마다 제각각으로 꾸며놓은 작은 마당을 구경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높은 담으로 집을 둘러싸는 대신에 낮은 펜스를 치고 그보다 키가 큰 나무나 꽃들로 한 번 더 경계를 구분짓고 있다. 어떤 나무들을 심었는지, 마당을 어떻게 꾸몄는지를 구경하다보면 집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아기자기한 꽃들이 가득찬 정원이 있는 마당, 낮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로 꾸며진 마당, 파란 수영장이 있는 마당, 크고 작은 나무들이 담장을 이루는 마당 등등 많은 영국인들이 주말에 정원을 꾸미는 것을 취미 생활로 하는 만큼 마당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았다. 이 곳을 꾸미는 사람들에게도, 스쳐지나며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오늘 내가 지나가며 본 어떤 마당은 여러가지 녹색의 나무들로 꾸며져있었다. 청록색, 연두색, 진녹색 등 저마다 약간은 다른 초록색을 뽐내고 있는 나무들이 자기집 정원 담벼락을 넘어 옆집을 넘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웃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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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원을 걸으려면 튼튼한 고무 재질의 Welly는 필수품이다. 영국에 온 첫날 흰 운동화를 신고 공원에 갔다가 진흙이 왕창 묻은 채로 집에 온 이후로 공원을 걸을 때면 반드시 이 장화를 신고 간다. 오늘은 비가 왔기 때문에 더더욱 내 산책 메이트이다.

공원을 걷는데 벌꿀 판매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철조망 안에 있는 공간에서 Steve씨가 양봉을 하고 있는데, QR코드로 접속해서 신청하면 7월 말에 수확한 벌꿀을 보내준다고 한다. 이 벌꿀은 작은 꿀벌들이 3마일이나 떨어진 꽃에 가서 모아온 벌꿀이라고 한다.

기후 변화를 이야기할 때 꿀벌이 자주 등장한다. 꿀벌은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한데,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꿀벌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겨울이 일찍 끝나고 이른 봄이 찾아오면 꿀벌이 일찍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때는 꽃이 충분히 피지 않아 먹이가 부족할 수 있다. 꽃이 일찍 피거나 늦게 피게되면, 꿀벌과 꽃이 어긋나게 되어 꿀벌이 필요한 시기에 먹이를 찾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꿀벌은 식물의 수분 역할도 하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식물이 번식하기 어려워져 생물 다양성과 식량 공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크기가 작은 생명체들도 생태계에서는 모두가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모네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주말 오후에 여유롭게 공원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국의 일부 공원에서는 자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는데, 골퍼들은 산책을 하는 일반인들과 구분할 수 있도록 반드시 빨간색 상의를 입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을 치기 전에 공을 치겠다고 소리친 뒤 공을 쳐야 한다. 간단한 장비를 들고 공원에서 캐쥬얼하게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개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의 존재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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