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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오후, 따뜻한 시간

런던 Afternoon Tea

by Sue

좀처럼 해가 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4월이지만 2월 같은 날씨의 런던은 늘 따뜻한 무언가가 생각나게 한다. 집을 나서서 걷던 중 바람이 너무 불어서 근처 카페로 잠시 몸을 피했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패딩을 입고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커플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날씨가 추우면 야외 자리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햇볕을 쬐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비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야외 테이블도 제법 사람이 찬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카페 내부를 구경했다. 커피 원두의 마대가 덮인 나무 소파,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말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카페에는 wifi가 없는데, 커피를 앞에 두고 핸드폰만 하지 말고, 앞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는 설명이 함께 쓰여 있었다. 설명을 읽고 하루 중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동할 때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하릴없이 쉴 때에도 늘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고 보게 되었다. 나는 핸드폰 중독은 아니라고 단언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점점 중독이 되는 단계로 나도 모르게 가고 있었다. 외국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핸드폰보다는 주위 풍경을 눈에 더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 밖을 보니 반대편 건물 1층에 자리한 가게들의 외관이 알록달록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창밖의 가게들을 담은 이 풍경 하나에 남색, 하늘색, 파란색, 주황색, 짙은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의 7가지 색깔이 담겨있는 것을 보니 도시의 다채로움이 주는 보는 즐거움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눈이 알록달록 했다.


이모가 빌려준 Victoria & Albert Museum 카드를 가지고 영국식 Afternoon Tea를 먹으로 V&A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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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박물관에는 Member's Room이라고 해서 V&A membership 카드를 가지고 있는 회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카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간단한 식사와 칵테일, 커피와 티를 판매하는 이곳은 런더너의 모임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쌀쌀한 오후여서 그런지 실내에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영국에 다시 온 이후 처음으로 Afternoon Tea를 주문해 보았다.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이 곁들여진 스콘, 우유가 함께 제공되는 홍차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영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디쉬나 테이블이 아닌 단출하지만 맛있는 스콘과 티가 더욱 그러했다. 귓가에 웅웅대는 영어 대화 소리도, 따뜻한 음식도 모두 나를 편안하게 했다. 소확행이랄까..?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늦은 오후.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왠지 모르게 걷고 싶어서 Hyde Park를 통과하는 길을 택했다. 날씨가 너무너무 흐리고, 심지어 바람도 불고 있는데도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 위에서 배를 타고 즐기는 것은 날씨가 좋은 날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런던 사람들은, 또는 런던에 여행을 온 사람들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는 계획성 인간이 아니라서 여행을 가도 미리 일정을 짜지 않고 당일의 날씨에 따라 일정을 정하는 편이었는데, 이 사람들을 보면 '날씨도 나를 막을 수 없다!'인 것 같았다.

그래. 하고 싶은 걸 하는데 비가 좀 내리면 어떠랴. 바람이 좀 불면 어떠랴. 꼭 맑은 날에만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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