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고통의 끝, 부르고스
고통이 사라진 길,
그 침묵 속에서
마음이 천천히 눈을 뜨고,
길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아타푸에르카에서 출발하자마자,
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간밤에 내린 소나기 탓에
자갈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자갈이 미끄러워
처음부터 워킹스틱을 사용했다.
날씨가 흐려 사방이 어두웠고,
숲 속은 더욱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작은 LED 랜턴 하나를
배낭에 달고 다녔는데,
어젯밤 가방을 내려놓을 때
충격을 받았는지, 고장 나 있었다.
스마트폰의 라이트를 켜자,
작은 불빛이
어둠을 한 조각씩 밀어냈다.
스마트폰은 부엔 까미노앱을 이용하거나
숙소를 찾고 예약할 때 유용하므로,
배터리가 충분한지 항상 확인해야 한다.
또한 어둠을 밝힐 때는
헤드렌턴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두 손은 워킹스틱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뒤에서 누군가의 헤드랜턴 불빛이 다가왔다.
서로의 빛이 합쳐지자,
숲 속의 어둠 속에도 길이 생겼다.
길 위에서는 말 한마디보다
같은 방향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더 큰 위안이 된다.
숲길을 벗어나니,
길가에 커다란 십자가와 쌓아 놓은 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출국하기 전,
고국에서 신문기사 하나를 읽었다.
순례자 한 명이 순례길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와 돌무덤 앞에서
작은 돌 하나를 올렸다.
순례길에서 죽음을 맞이한 순례자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남은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르내리다 보니,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어둠이 걷히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황금빛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발밑의 흙길은 고요했고,
바람은
잘 익은 밀의 향을 실어 날렸다.
부르고스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이상하게도 더 차분해졌다.
피레네의 숨 가쁜 고도도,
라리오하의 뜨거운 태양도 지나왔건만,
이 평원의 적막 앞에서는
오히려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
아침 햇살에 들판이 불타듯 빛났다.
그 위로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는
마치 또 하나의 순례자가 되어
앞서 걸어가는 듯했다.
육체의 고통이 조금씩 옅어지자,
마음은 비로소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들판의 흔들림, 하늘의 숨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
그 끝이 어딘지 몰라도
이 길 위에서 만큼은 두려움이 아닌,
조용히 묵묵히
나를 부르고스로 이끌었다.
'부르고스 가는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중에서,
'짐을 내려놓는 구간'이라는 상징이 있다.
무게의 여정에서 비움의 여정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그 이유는, 이전에 걸었던
나바라, 라 리오하 지방의 오르막이 끝나고
끝없는 평원의 시작,
즉 '메세타'로 진입하는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길이 완만해지면서,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무게가
더 뚜렷해지는 구간에 접어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순례자들은
"육체적으로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배낭을 정리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길 위의 자유'를 처음으로 체험한다.
육체적 고통의 끝, 마음을 비우는 구간인
부르고스를 간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몸과 발끝이 설렘으로 가벼웠다.
나는 부르고스 국립 알베르게를 향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좋기로 유명한
3대 국립 알베르게 중 하나이므로
서둘러야 했다.
부르고스 대도시 입구에 들어서자,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부엔 까미노 앱을 열어,
내가 길을 벗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도시 초입에서도 1시간 이상을
더 걸어야 했다.
버스를 이용하면 10분 정도 걸리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도착지에 도달하자,
부르고스 국립 알베르게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12시에 도착했는데 3층에 배정받았다.
이곳은 규모가 매우 크고 깨끗했으며,
매트도 넓고 편했다.
특히 2층 침대에 칸막이가 있어 좋았다.
걷기에만 집중한 보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순례길을 걷는 처음 1주일 동안,
새벽에 일찍 출발해도
카페 두 번 정도 들리고,
길에서 쉬기도 해서,
4시 전에는 도착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들처럼 씨에스타를 즐기며
낮잠 자는 것은 꿈꾸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빨래를 야외 건조대에 널어놓고,
처음으로 스페인의 '시에스타'를 즐기려고
침낭 속에 들어갔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었다.
거센 빗소리에 놀라, 곤한 잠에서 깼다.
소나기가 스스로 존재감을 과시하듯,
요란스럽게 퍼부었다.
급히 빨래를 걷으러 나갔지만,
누군가 내 옷이 널려진 건조대를
비를 피해 옮겨두었다.
낯선 이의 배려가
뜻밖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오랜만에 여유 있게 도시를 거닐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3대 대성당인,
부르고스, 레온,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중세 시대부터
많은 유럽 순례자들이 부르고스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기에,
프랑스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중세의 유명한 기사인,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와
그의 아내, 헤메나의 무덤이
대성당 내부에 안치되어 있다.
부르고스는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건설한 요새도시이다.
가톨릭이 이슬람을 몰아내고
국토통일을 했을 때,
공헌했던 이가 엘시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르고스 중심가에서도
엘시드 기마상을 볼 수 있었다.
피레네의 고통을 지나온 발걸음이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부르고스는 육체의 고통이 끝나고,
마음을 깨우는 길이 시작되는 첫 문이다.
중세의 관문이었던 산타마리아 문을 통과하며,
나는 자문했다.
“나는 왜 걷는가, 무엇을 내려놓으려 하는가.”
고통을 이겨낸 발걸음 위에
고요가 내려앉고,
그 고요 속에서 길은 다시 열린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육체적 고통이 끝나는 곳에
비로소,
마음을 여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 길 위에서,
나는
'진정한 나'를 만날 것이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