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울 수 있다
순례자여!
자연과 하나 되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길을 걸으며
'진정한 자아'를 만나기를
세상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을 깨닫고
배낭의 짐을 비우듯
마음의 짐을 비우니
이리도 행복하구나!
부르고스를 향하던 길,
카스트로헤리 마을 초입의
시립 알베르게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순례자는 등에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있었다.
라디오, 우산, 카메라, 다리미까지...
마치 세상의 모든 물건을 짊어진 듯 보였다.
그의 머리 위에는,
안락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노인이 모습이 떠 있었다.
실제로,
밥통을 가지고 다니다가
무거워 결국에는 버렸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벽화를 보고 한참 웃었다.
길 위의 순례자들 모습을
아주 리얼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벽화 속,
의자에 앉은 노인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짐을 내려놓는 순간,
길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걷다 보면,
짐을 내려놓는 용기를 배운다.
처음에는,
'없으면 불안할까 봐' 챙겼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불필요한 짐이 된다.
배낭이 가벼워질수록
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을 비울수록
세상은 가까워진다.
짐을 비우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집착과 불안을 놓아주는 것이다.
그동안 꼭 쥐고 있던 것들 중
사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내 배낭에는 아직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로
잔뜩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지탱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비워진 자리에 바람이 스며들고,
그 바람 속에서 오래 잊고 있던
나의 숨소리가 들릴 것이다.
순례란 결국,
그렇게 가벼워지는 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