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킬로미터를 걷는다고요?
길은 멈추지 않는다
멈춰 선 것은 두려움뿐이다
그러나,
폐허의 끝자락에서조차,
길은 다시 불씨를 일으키며
살아난다
우리는 그 불꽃 하나에 이끌려
다시,
앞을 향해 걷는다.
다음날 새벽,
새로운 하루의 순례가 다시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환대로 지친 순례자는
마음 편하게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그라뇽 수도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바게트 빵과 커피를 마시고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는
그런 언어가 존재하듯
나는 떠날 때,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이른 새벽, 수도원의 문이 열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또 길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하늘 아래,
바람은 차가웠다.
어제의 피로는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그라뇽의 식탁에서 나눈 온기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비움은 나눔으로 이어졌고,
나눔은 다시 길의 힘이 되었다.
이젠 걷는 것에 익숙해진 듯했다.
벨로라도 성당에 오전 11시 반에 도착했다.
오늘 목적지는 벨로라도였는데,
예상외로 너무 이른 도착이라
성당에서 스탬프를 받고 더 걷기로 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나서
아무 마을에서나 묵기로 했다.
순례길은 늘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도, 거리도, 마음의 속도도
늘 예측을 벗어난다.
성당 앞에 서 너 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보였다.
청년들 중 한 명은,
한쪽 무릎에 하얀 보호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과 '용서의 언덕' 내리막길에서,
무릎과 발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있었다.
걷다 보면, 나이가 지긋한 순례자들보다
오히려 일부 20, 30대 순례자들의 부상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체력을 장담하거나,
일정이 빠듯해서 무리하게 많이 걷는 경우,
신발이 불편하거나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배낭이 너무 무거워,
다리에 무리가 생긴 경우 등이 있다.
벨로라도 성당을 지나니,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벽화를 보고 있을 때,
한국인 30대 청년을 만났다.
오늘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어서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걸을 수 있을 만큼 걷다가
맘이 닿는 곳에서 묵으려고요.”
청년은 말했다.
“함께 걸었던 일행이 앞서서 걸어갔는데,
sns로 답이 왔어요.
벨로라도 알베르게들이 이미 예약이 차서,
다음 마을 숙소에 가까스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래서 걷다가 괜찮은 알베르게 있으면
바로 가려고요.”
그는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싶어서,
그에게 보폭을 맞춰 걷지 않았다.
길 위에서는
누구의 속도도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각자의 리듬으로 걷는 것이
서로를 가장 온전히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혼자 걸었다.
벨로라도를 지나 빌람비스티아 마을에
해바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9월의 해바라기들은
더 이상 태양을 향하지 않았다.
대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흙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한때 황금빛으로
세상을 물들였던 꽃들이 이제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듯,
고요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볼품이 없었다.
줄기는 말라 있었고,
꽃잎은 이미 생기를 잃었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 수많은 해바라기들이
가을의 깊고 중후한 분위기를 이끌어,
걷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들어가는 꽃이
이렇게 오묘한 빛을 낼 줄은 몰랐다.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시들어가는 꽃도 아름다웠다.
황금빛을 발산하며,
아름답고 황홀한 시절이 지나고
흙빛으로 변하는 해바라기의 모습은,
흡사 인간의 모습 같았다.
피어날 때의 찬란함보다,
사라져 가는 순간의 고요함이
더 가슴깊이 느껴졌다.
시들어가는 꽃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완성이었다.
태양을 향했던 시간들이
흙으로 돌아가며,
그 빛이 세상 어딘가에
다시 스며드는 듯했다.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보라.
죽어가는 모습에 두려운 흔적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받아들이며
그처럼 평온하게 죽어가고 있다.
자연은 내게서 세상의 소리를 가져가고
고요함을 안겨주는구나!"
해바라기를 넋 놓고 바라보며
혼자 걷다가 벨로라도에서 만났던
그 청년을 또 만났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더 걸을 수 있었지만,
비가 멈출 것 같지 않아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에서
알베르게를 찾아다녔다.
작은 마을이어서,
좋은 알베르게는 이미 풀북이었다.
다행히 1층에 바를 운영하고 있는
작은 알베르게에 베드가 있어
그곳에서 비를 피했다.
젖은 옷을 세탁하고 샤워한 후,
숙소에서 준비한 허브차 한 잔을 마시니
몸이 조금 따뜻해지면서 편안해졌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비가 계속 오지 않으면 더 걸으려고 했어요.
근데 비가 멈출 것 같지 않더라고요.
보통 얼마나 걸어요?”
그는 말했다.
“매일 35킬로 정도 걸었어요.
길에서 만나서 같이 걸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다들 많이 걷더라고요.
나만 조금 걸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많이 걸었죠.
그리고 내일은 부르고스에 도착해서
판초우의와 신발을 사야 해서,
42킬로 정도 걸어야 해요.
슬리퍼 신고 걸었더니 발이 아프더군요.”
그러고 보니, 길을 걸을 때
그는 뒤가 막힌 워킹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다가 힘들면 중간 마을에 머물겠지만,
일찍 출발해서 할 수 있는 한 해보려고 해요.”
내가 놀라 다시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42킬로 걷는 게?
아까 벨로라도 성당 앞에서
다리를 절뚝이는 20대 청년 봤어요.
무리했는지... 워킹스틱도 없었고요.
제발 부상이 없기를 바랄게요.”
길을 걷다 보면,
경기하듯이 앞만 보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주로 한국인들이었다.
그래서 길 위에서 만난
외국 순례자들은 묻는다.
왜 한국인들은 앞만 보고
그렇게 서둘러 가냐고...
한국에서 늘 경쟁하듯이
하루하루 살아온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여유 있게 시간을 내지 못해,
혹은 귀국 비행 날짜에 맞춰야 해서
서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이 청년도 후자의 경우였다.
그는 내일 부르고스까지
약 42킬로를 걸어야 한다.
내일 워킹 슬리퍼를 신고,
부르고스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진심으로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순례길 여정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더라도,
모두가 길벗이다.
나뿐만 아니라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 간절하게 가슴에 품었던,
걷는 이유를 포기 없이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아프지 말고
다치기 말기를...
길은 때로는 멀어지고,
때로는 사라지는 듯 보여도
그 끝에는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길은 결국,
다시 걷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줄 뿐이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