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길, 그라뇽
지옥은 끝이 아니었다
불이 사라진 자리에 빛이 남았다
고통은 문이 되었고,
그 문을 지나자 고요가 있었다
천국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단테의 '신곡'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지옥의 알베르게가 있는
나헤라의 새벽문이 열리자,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조금씩 밀려나고
빛이 열리기 시작했다.
불이 식은 자리에 빛이 피어났고,
무너졌던 마음이
천천히 자리를 찾아갔다.
지옥과 천국은
서로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의 끝을 이어주고 있었다.
지옥의 밤을 지나,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하늘이었다.
“지옥의 밤이 끝나고,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끝이라 부르던 것이,
빛의 문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퍼져 있었다.”
라 리오하의 흙길을 따라,
억새풀이 은은하게 펼쳐졌다.
느리게 걷다 보면,
서두를 때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보물들이
섬세하게 한 올 한 올 보이기 시작한다.
길 위에는,
순례자의 실루엣을 본뜬
철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몸은 텅 비어 있었다.
바람은 그 빈 형상을 통과했고,
빛은 그의 몸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순례길이란 결국,
그렇게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었다.
비워내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때로는 무너지는 일과 같았지만,
비워진 자리로 스며드는 바람과 빛이
곧 ‘깨달음’을 주었다.
결국 순례란,
비워지면서 채워지는 여정이었다.
조형물 아래에는 자갈길이 깔려 있었다.
돌멩이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역경 같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몸의 긴장 속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가는 법을 배웠다.
그 고통을 통과할 때,
진정한 평온이 찾아온다.
조형물은 그 자리에 멈춰 있지만
수많은 순례자들의 여정들이,
그 비어있는 형상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 길 위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느리게 걷다 보니,
스쳐 지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사유하며,
길 위에서 보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되었다.
드디어,
“지옥 같던 나헤라를 지나,
천국 같은 그라뇽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벽화 옆 계단은,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으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수도원 알베르게가 있었고,
순례자들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공동체 숙소로 유명하다.
수도원 알베르게는 국립과 마찬가지로
예약이 가능하지 않았다.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베드를 배정받는다.
그라뇽 수도원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니,
매트가 깔린 자리에 이미 짐이 많이 놓여 있었다.
3시에 도착한 나는,
바로 문 앞에 있는 매트에 짐을 놓았다.
작은 마을의 수도원 알베르게에서는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등,
평온한 모습이었다.
함께 요리하고, 미사 드리고,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그라뇽 수도원의 전통이었다.
큰 테이블을 몇 개 이어,
각자 역할을 나누어 음식을 준비했다.
누군가는 채소와 과일을 손질하고,
누군가는 썰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말보다 먼저 마음이 일어났다.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동안,
낯섦은 천천히 친숙함이 되었다.
식사가 끝나면 모두 일어나
테이블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라뇽의 밤은 그렇게,
함께 만들어졌다.
서로의 이름도, 언어도 달랐지만
그날의 피로와 허기를 나누는 마음은 같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함께’를 배워가고 있었다.
길 위에서는 비우는 법을 배우고,
이곳에서는 나누는 법을 배웠다.
그 단순함 속에,
길 위의 모든 온기가 녹아 있었다.
그 이후, 성당으로 다시 이동하여
마무리 기도시간을 가졌다.
나라별 언어로 되어 있는 기도문을
순서대로 읽고,
촛불을 들어
하고 싶은 말을 한 후,
옆 사람에게 촛불을 건네주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게 해 주옵소서.'
그라뇽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갔다.
촛불 아래 얼굴마다,
잔잔한 평온이 내려앉았다.
그라뇽의 밤하늘 아래,
모든 영혼은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지옥과 천국은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둘은 같은 하늘 아래 이어져 있었다.
고통은 빛의 그림자이고,
절망은 희망이 자신을 숨기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한 길 위를 걷는다.
눈물로 젖은 땅에서 꽃이 피고,
타오른 자리에서 새벽이 온다.
지옥을 건넌 발로 천국을 밟으며,
서로의 온도를 배우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
끝없이 이어진 하늘을 건너는 일.
어둠과 빛이,
하나의 선 위에서
흔들리며 만나는 여정.
나는 오늘도
걸으며 깨달았다.
지옥을 통과해야
비로소,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