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알베르게
살갗을 스치는 칼날처럼
태양은 나를 베어낸다.
포도가 익어가듯,
나는 고통 속에서
빛으로 단단해진다.
라헤라 공원을 지나니,
해가 호수를 비추기 시작했다.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은 물 향기를 품어
내 어깨를 스쳤다.
나는 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섰다.
숲의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하나의 숨으로 들렸다.
빛은 나무 사이로 쏟아지고,
새들은 내 발걸음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 가는 길,
표지석에 새겨 있는 가리비껍데기는
여태껏 걸으면서 보았던 것과,
모양이 달랐다.
나바라 지방에서는,
노란색 화살표이거나
파란색 배경에 금색으로 새겨진
가리비 문양이다.
가리비에서 퍼져 나오는 노란 선들은
모든 길이 산티아고로 향한다는 의미이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 부근에서는,
돌기둥 위에
검은 철제 가리비 문양이 있는
표지석이 등장한다.
이것은 '라 리오하' 지방에 들어왔다는
표식이다.
라 리오하는 스페인의 대표 와인산지로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토양은 철분이 많아 붉은 흙빛을 띠어
'순례자의 붉은 발자국'이라 불린다.
라 리오하 지역은
최대 포도 생산지답게
맛 좋은 와인으로 유명하다.
비옥한 붉은 토양이
포도를 자라게 하는 영양분이었고,
풍요로운 포도와 붉은 토양은
보는 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가는 길마다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햇빛과 인내로 포도는 익어가고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길,
그것이 바로 라 리오하의 길이었다.
정오가 지나자,
9월임에도 스페인 하늘은
계절을 잊은 듯 불타고 있었다.
포도밭의 열매들은 그 열기를 견디며,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그 길을 걷는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숨이 차올랐고,
어깨의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시에스타 종이 울리면,
스페인 전체가 잠이 든다.
그러면,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걷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었다.
피부를 베어내듯,
태양은 정말 잔인하게 내리꽂고 있었다.
땡볕에서 걷는 고통을 잊으려
서둘러 걸었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약 29킬로미터 걸었다.
걷기만 했다.
카페에 들르지도 길가에 쉬지도 않고
걷기만 했다.
국립 알베르게는 선착순이라 걷기만 했다.
그 용광로 속에서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시험하는 듯했지만,
그 순간마저 삶의 일부라는 걸 느꼈다.
1시 전에 도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헤라 국립 알베르게는
최악의 알베르게들 중 하나로
악평이 나있다.
베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눅눅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악 중의 최악은,
알베르게에 머무른 일부 사람들이었다.
밤 10시, 불이 꺼지고
순례자들은 하나둘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들만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낮처럼 커졌고,
웃음은 벽을 넘어 잠든 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어둠은 그들의 무례함으로 더욱 짙어졌다.
그 시간,
알베르게는 휴식의 공간이 아니었다.
타인의 피로에 대한 배려 없이 떠드는 사람들.
크고 작은 소리들, 웃음 소리들이 마구 뒤엉켜
그야말로 '아수라장' 이었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곳은,
한낮의 땡볕이 살을 베어내듯,
지옥의 불이 떨어진 알베르게 같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춤추듯 빛나는 별이 보이듯,
천국은 내 마음속에 있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던 첫날,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위에서
나는 한계에 부딪혔었다.
그러나 그날밤,
창밖으로 비취던 유난히 빛났던 별들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오늘, 나는 지옥 같은 하루를 지나며
다시 하늘을 본다.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어두운 길의 끝에는,
언제나 별이 있다'는 것을.
삶의 여정이란,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천국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었다.
어둠의 끝을 걸어야만
비로소,
별을 볼 수 있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