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팩스(K-PAX, 2001) - 영화 리뷰 에세이
| 외계인의 관점에서 지구인을 바라보다.
프롯(케빈 스페이시)은 외계인이다. 어느 날 기차역에 빛과 함께 나타난 그는 케이팩스(K-PAX)라는 별에서 왔다고 한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본 프롯(케빈 스페이시)은 정신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 할 만큼 이상한 사람이다. 지구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크(제프 브리지스)는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는 박사다. ‘박사’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 그는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자 권위자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미쳤구나 생각하며 무시했을 정신병동의 사람들에게 프롯은 친절하게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정신과 의사인 마크는 이 분야에는 이름난 인물이지만, 그의 가정과 가족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 둘에 대한 이야기이다.
| 지구인이 만들어낸 시스템.
여러 명의 의사가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그들의 지식을 토대로 프롯에 대해 진단한다. 조금 더 프롯을 알아보자는 마크와는 달리 다른 의사들에게 프롯은 무수히 많은 환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 프롯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크의 말에 아직 15명의 환자를 더 봐야 한다는 동료 의사의 말이 영화 속에서 현실로 잠깐 나오게 만들었다. 그래, 그들에게는 프롯 말고도 무수히 많은 환자들이 있어. 우리나라 의사들이라면 100 명은 봐야 하겠지. 제한된 시간과 필요한 수익만큼 병원에서 일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한 명의 환자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낸 만큼의 이익을 취하려는 소비자들은 때로는 무례하며, 막무가내로 조금 더 서비스를 받으려 하는 그런 사회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더 현실적인 모습이겠지. 그리고 이것은 의료서비스만의 문제가 아닐 거야.
| 외계인이 사람들을 치유하다.
오랫동안 병동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프롯은 사람마다 필요한 처방을 내린다. 마크가 치료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둘씩 희망과 의지를 주는 프롯. 마크는 자신의 환자에게 함부로 처방하는 프롯에게 화를 내지만 프롯의 처방은 마크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마크가 그동안 치료하지 못한 환자이므로.
마크는 자신의 분야에 정통해 있는 인물이지만 프롯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네요.’라며 그를 당혹하게 만든다.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프롯을 상담하지만, 지극히 전문적이다. 그의 가정은 프롯이 ‘지구인’이며 ‘비정상’이라는 가정을 둔 것이다. 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그렇게 다뤄지듯 사람이 아닌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간주되고 거기에 맞는 전문화된 처방이 있을 뿐이다.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곳에는 없다.
프롯을 알아가면서 마크의 태도는 점차 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바빠서 대화를 하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고, 단절된 아들이 있었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작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없는 마크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양 공감이 된다.
초반부에 프롯과 마크가 겹쳐지는 모습은 이런 우리의 모습 속에서 삶의 행복을 원하는 또 다른 자아처럼 비친다.
| 상처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훈훈하게 이 영화의 엔딩을 바라보면서 문득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프롯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하고 말이다. 프롯이 몸을 빌린 지구인인 로버트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다. 깊은 상처를 받아서, 삶의 목적을 잃어서, 이 시대에 살기에는 지극히 예민해서, 사회적 성공을 향해 달리다 보니 가족에 소홀해서...... 우리도 어쩌면 조금씩 저런 병들을 마음속에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환자들이 아닐까?
| 우리에게 파랑새는 로또뿐인가?
삶의 모습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시선.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빨리빨리’를 가장 먼저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이 당연시된 일상 속에서 너무 바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 삶의 목적이 ‘성공=돈’이라는 비중이 가장 큰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조차 누릴 여유도 없겠지 하는 생각이다. 이런 고민은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이 우리 스스로를 영혼이 없는 삶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건가?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든 것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잘 살려는 목적이 뭐지?’라는 아주 심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리고 가족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