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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26. 2018

해바라기 사과

특수학급에서의 에피소드

  교문에 들어서자 윙~ 윙~ 위잉~ 하는 제초기 소리가 들린다. 교실 앞 잔디가 벌써 맨도로롬해졌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화단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나 왔다갔다했는지 성한 잎이 하나도 안 보인다. 주무관님 앞에 바짝 섰다.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보이지도 않는 걸 거참 성가시게 구네. 아침부터 땀 빼면서 일하는데 짜증나게 하네, 참말로.” 

  제초기는 계속 윙윙 돌아간다. 코앞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제초기를 가리켰더니, 그제서야 끄신다. 

  “선생님, 제가 저번에 행정실에 찾아가서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 귀찮게 심었냐고 하셨지요? 교육활동으로 한 거니까 불편하시더라도 행정적인 지지 부탁드린다고 말씀 드리면서 해바라기 주위는 제가 낫으로든 가위로든 자르겠으니 응원해달라고 거듭 말씀드렸잖아요. 제 취미로 키우는 게 아니라 교육활동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잎 하나 안 보이게 다 잘라내놓고 저에게 지금 ‘짜.증.나.네.’라고 말씀을 하시나요? 이게 선.생.님.께서 그렇게 짜증이 나실 만한 일인가요?”

  “네, 짜.증.납.니.다. 짜증나게 하네, 정말!”

  발이 떨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 했지만 벌렁거리는 가슴을 짓누르며 교장실로 직행했다. 학교에 마음 붙이기가 힘들어서 필사한 시 공책을 복사해서 화장실 칸칸이 붙여둔 적이 있다. 학생들 하교 후, 조용한 교실에서 머리를 쥐어 잡고 있을 때 교장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화장실에 마음 붙인 사람이 그대인 거 같다’고 고마워서 그런다면서 송경동의 ‘주름’을 낭독하시고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다. 그런 적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씨앗 세 봉투를 모두 털어 심은 해바라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고자질하면서 울어버렸다.     


  학생들과 해바라기 씨앗을 사서 심었다. 혹시라도 누가 밟을까봐 ‘해바라기’ 푯말도 세우고 거름을 봉분처럼 덮어주고 아이스크림 색막대도 꽂아두었다. 싹이 나고 키가 크면 해바라기가 창문 너머로 우리 교실을 들여다볼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해바라기랑 마주 보고 공부를 할 것이다.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고나면 씨앗이 영근다. 씨앗을 반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고, 까먹을 수도 있다. 이 풍성한 그림을 우리는 아침마다 물을 주면서 꿈꾸었다. “해바라기야, 물을 먹고 씩씩하게 자라라.”, “해바라기야, 사랑해.” “해바라기야, 어서 보고 싶어.” 여러 응원을 망설임 없이 다독다독 외쳤다. 


해바라기 새싹


  대영이는 섬세하고 여려서 발표할 때에도 속삭인다. 누군가 몰아세우면 자신을 변호할 때 말을 더듬거나 얼굴이 붉어져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린다. 아침마다 그리는 감정 스케치북에 ‘지각해서 슬프다.’, ‘지각 안 해서 행복하다.’를 번갈아가며 쓴다. 해바라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대영이는 자신의 마음날씨에 ‘해바라기 새싹이 나서 행복하다.’, ‘해바라기 물 줘서 행복하다.’, 해바라기 쭉쭉 자란 걸 봐서 행복하다.’고 표현을 하였다. 물을 줄 때에도 가장 큰 물병을 들고 갔으며, 가장 큰 목소리로 해바라기를 응원했다. 

  민재는 사실과 겪은 일을 그대로 기억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읽거나 공감을 표현하는 것은 드물다. 해바라기에게 물을 줘도 조리개의 물을 정확히 삼등분해서 세 주에 고루 나누어준다. 감정 스케치북에 해바라기 싹의 크기와 뻗은 방향대로 그리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는다, ‘해바라기 새싹이 났다.’, ‘해바라기 떡잎과 본잎을 보았다.’처럼. 한번은 민재가 대영이의 신발에 물을 주었다. 그날의 마음 날씨는 ‘한대영 발에 물 뿌려서 혼났다. 나는 외롭다.’로 표현하였다. 점심시간에 교실 앞에서 축구공놀이를 하는데 조용해서 바깥을 내다보니 화단의 해바라기를 고양이를 쓰담듯이 쓰담쓰담하고 있었다. 

  사춘기라 뭐든 유치하고 번거롭고 시시하다고 말하는 6학년 윤준이도 ‘해바라기 싹이 돋아난 것을 보았다. 신기했다.’고 표현하였다. 수업 시간에 졸리다며 보건실에 가거나 복도 벽에 야구 공 던지기를 하느라 지각하던 도영이도 해바라기 물을 줄 때면 시간 맞춰 왔다.    

  장마가 시작되고 하늘이 우릴 대신해 해바라기마다 고르게 실컷 물을 주는 사이에 우리는 잠시 해바라기를 잊었다. 떡잎과 본잎이 나고 잎이 네 개로 나는 것까지만 사진을 찍었고 관찰일기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장마가 그쳤으니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물을 줘야지 하던 참이었다. 이제는 잎만 그리지 말고 키도 재보고 얼마나 컸는지 언제쯤 더 커질지 어림도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 찰나에 행정실 주무관님은 장마철에 쑥쑥 자란 잔디를 시원스럽게 잘랐고 해바라기도 말끔히 베어졌다. 


  그날은 학생들과 사회참여학습이 있었다. 학교 앞 작은 도서관에 가려고 나오는데, “선생님, 우리 해바라기한테 인사하고 가요.” 하며 화단으로 달려간다. 베어낸 상흔들도 말끔히 치워진 화단에 해바라기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보는 학생들을 보니 이번 일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출장을 나왔다. 한참 회의하고 나오니 동료한테 문자가 왔다. 교장선생님께서 행정실장님께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면서 쓰린 맘을 어떻게 달래고 있냐고 물어왔다. 퇴근하고 속상해서 SNS에 사연을 올렸다. 어느 얄궂은 친구가 본인 소속교 행정실 주무관님은 어찌나 솜씨가 좋으신지 해바라기가 상하지 않게 제초기를 다룰 줄 아시며 해바라기가 이렇게나 많이 자랐다고 사진까지 올렸다. 


  그 주에는 공교롭게 출장과 업무가 밀려서 행정실에 갈 짬이 나질 않았다. 금요일 오후, 주무관님께 메신저 쪽지를 보냈다. 

  “선생님, 혹시 지금 바쁘실까요?”

  “아니오.”

  “상담하고 싶은데 지금 행정실에 가도 되겠습니까?”

  “네. 왜요?” 

  학생들의 관찰 일기 겸 마음 날씨 겸 그리고 쓰는 스케치북과 그동안 찍어서 교실에 차곡차곡 붙여나갔던 관찰 사진을 들고 행정실에 찾아갔다. 여러 주무관님들께서 각자 조용히 일을 하고 계셨다. 탁자에 마주 앉아 스케치북을 펼쳐보였다. 해바라기 프로젝트가 이벤트나 취미삼아 해본 게 아니라 학생들의 부푼 꿈으로 계획된 사항이었고, 마른 아침마다 물을 주며 공들이고 있었으며, 학생들이 이 과정에서 얼마나 놀라운 변화와 감동이 있었는지를 말씀드렸다. 방학 날 각 가정에 돌려보낼 이 스케치북에 해바라기 관찰일기가 중단된 걸 보호자분들께서 보시고 여쭈면 교사로서 설명할 방법을 못 찾겠고, 그분들은 특히나 자녀들의 차별에 민감하신데 유독 우리반 화단의 식물들만 작살난 사태를 아시면 장애인차별이 아니냐고 확대 해석도 가능한데 내가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둥.. 가능한 모든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아무래도 학생분들께 공개 사과를 해주셔야 겠다면서 방법은 간접적(서면, 음성, 영상 등), 직접적(면대면)인 방법이 있으니 선택하셔서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씀을 드렸다. 스케치북을 넘기고 사진을 건네는 내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려서 이 분이 나를 우습게보면 어쩌나 싶은 맘까지 들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차분히 말씀을 드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끝나고 나오는데 뒤가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돋았다.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을 다른 주무관님이 붙잡고 아무 말 없이 갓 삶은 계란을 쥐어주셨다. 


  ‘수요일 1교시 방문 사과’. 잊을 리가 없지만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모니터 귀퉁이에 쪽지를 붙여두었다. 수업 중에 인터폰이 울린다. 여러 번 다시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에 학생들에게 지난 해바라기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 9시 30분. 똑.똑.똑. 교실 앞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주무관님께서 들어오셨다. 손에 해바라기 칼라 사진을 인쇄한 종이를 들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 흰 이만 보이고 웃으신다. 학생들과 마주앉으셨다.

  “선생님이 잔디와 해바라기를 구분하지 못해서 여러분들이 심은 해바라기를 잘라버렸습니다. 미안합니다. 대신에 해바라기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의 해바라기도 자라서 꽃이 피었다면 이렇게 핍니다. 나중에 씨앗도 생겨서 먹기도 하고 심을 수도 있습니다.”

  “안돼요! 그러니까 왜 잘랐어요.”라며 대영이가 사과를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평소에 허용적인 분위기에서도 더듬고 들릴 듯 말듯 말하였는데 망설임 없이 따박따박 담임보다 시원하게 말을 잘도 한다. 해바라기 사진을 잡은 주무관님 손이 멋쩍어져서 옆에서 내가 거들었고 겨우 서로 화해를 했다. 주무관님께서 나가시고 마음날씨를 쓰는데, 대영이는 줄줄줄 말한다. “행정실 선생님께서 해바라기 사진을 주셨다. 왜냐면 내가 심은 것을 모르고 깎았으니까. 사진은 가짜다. 해바라기 다 자라면 씨 빼서 다시 심어야 겠다. 선생님이 사과하러 와서 감동했다.” 감정보다 사실을 주로 말하는 민재는 해바라기 사진을 붙이고서 “행정실 선생님께서 주셨다. 해바라기 또 안 생긴다. 슬프다.”고 표현했다.   


   대영이에게는 학교에서 건장한 어른 남자 사람이 자신에게 직접 머리 숙여 사과를 하는 경험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난 학생들에게만큼은 더더욱 존중받는 학교의 구성원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무관님의 고개 숙인 사과가 학생들에겐 그들의 자존감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질 수 있는 기회였으리라 믿고 싶다. 나 역시 주무관님께서 해바라기 사진을 학생 수 만큼 뽑아 오셨고 종이를 든 손이 행정실에서 스케치북을 펼쳤던 내 손처럼 떨리는 것을 보면서 그분의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내 개인의 일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까. 그분의 마음은 이번 일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잘한 것 같지만, 내 마음 한켠은 기어이 사과를 받아낸 게 꼭 시원하지만은 않기도 하다. 내일은 시원한 수박 한 덩이를 들고 학교에 가봐야 겠다. 주무관님께 작은 쪽지도 건네고 나도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건네야 겠다. 수박을 먹는 우리 손은 떨지 않고 정겹게 주고받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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