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m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블랙윙 연필 feat 꾸준함의 기술

by 블루문R


몽당연필로 쓰고 있는 모닝페이지


이른 아침, 짧아질 대로 짧아진 연필을 잡고 모닝페이지를 썼다. 오늘까지만 쓰고 버리자, 오늘까지만 쓰고 버리자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로 재보니 7cm다. 지우개가 붙어 있는 부분을 제외하니 3.7cm.


이 연필은 어떤 모임에서 선물 받은 그 유명한 '블랙윙'이다. 헤밍웨이가 사용했다는, 한 자루에 3,000원이 넘는 연필이다. 처음 이 연필로 글을 썼을 때 그 부드러움에 놀랐다. 물렁한 듯, 부들부들 써지는 필기감에 홀딱 빠졌다.


이 필기감 때문에 마구 갈겨쓰는 모닝페이지를 쓸 때 딱이다. 모닝페이지는 틀린 글자를 고치지 않는다. 글씨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도식을 그려도 된다. 내 마음대로 마구 흘려쓰는데 블랙윙이 딱이다. 나의 소중한 아침 시간이 담기는 모닝페이지니 아껴두었던 블랙윙을 마구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 2~3페이지 마구 쓰다 보니 이렇게 짧아져 버렸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뒷부분에 지우개가 붙어 있어서 연필깍지를 끼울 수가 없다는 것.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몽당연필 덕에 연필깍지가 많은데 블랙윙에는 끼워지지 않는다. 그 덕에 이 짧은 연필을 엄지와 검지로 꼭 잡고 글씨를 쓰고 있다.


SE-759834df-4b21-4697-977c-4cbd76375c34.jpg?type=w1 나의 모닝페이지와 몽당연필


몽당연필과 함께 쌓아온 시간들


최근 나의 모닝페이지에는 글쓰기의 방향과 5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돈벌이에 대한 고민들이 담기고 있다. 이렇게 계속 쓰기만 한다고 뭔가가 될까, 내 능력 부족 아닐까, 나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나는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마치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 같은 날들이다.


오늘도 역시 이런 글을 쓰다 짧아진 블랙윙에 눈길이 갔다. 어린 시절 이후 이렇게 짧아질 때까지 써본 최초의 연필이다. 매일 쓰고, 깎고, 또 써왔다. 모닝페이지를 쓴 지 12주 째, 짧아진 연필과 함께 나의 시간이 쌓여 있다. 문득 요즘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것 같을 때 믿을 것은 내가 쌓아온 시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아진 연필을 다시 깎을 때, 쥬스업 3색펜의 리필심을 갈아 끼울 때, 필사 노트 한 권이 채워질 때, 독서노트를 채워갈 때, 해빗트래커의 칸이 채워질 때. 뭔가를 끄적거린 나의 시간이 노트와 펜, 연필들로 인해 선명해진다. 매일 쓰면서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안도감이 함께 쌓여가는 것일테다.




지혜로운 숲 님과 함께 하는 필사 모임에 함께 하며 매일 아침 올라오는 필사 글을 따라 필사를 하고 글을 쓴 지 365일이 되었다. 마침 오늘 말이다. 그리고 오늘 신기하게도 '꾸준함'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꾸준히 시간을 쌓아가는 그 자체가 나만의 자부심이 된다는 걸 실감하는 오늘이다.


무언가를 계속하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보잘것없고 별것 없는 듯 보이는 작은 변화가 어느새 커다란 변화로 자라난다.
언젠가 변화를 실감하는 날이 온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의 감동.
그것이 꾸준함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다.

- 꾸준함의 기술, 이노우에 신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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