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 (12)

by epoche

작취미성.


전날 술기운이 올라 화장실로 향했다. 잠깐 변기 위에 앉아 쉬다가 장전 동시호가 거래 상황을 확인했다. 딱히 특이한 점은 없었다. 계좌를 보니 어느덧 수익률이 70%를 넘어 있었다. 이대로 실현만 해도 곱버스로 입은 손해를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하지만 인간이 간사한 게,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 손해액 이상만 거두면 바로 시장가로 전량 매도하고 지긋지긋한 주식판을 떠나겠다고 다짐했건만, 접때의 결기는 온데간데없고 욕심이 그득해져 한 밑천 마련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100%.


그래, 딱 두 배만 먹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려는 순간, 메시지 알림이 떴다. 은인 재원이었다. 망설임 없이 열어보았다.


- 주신, 엔피스 매도 시그널 왔네


순간 우주가 멈춘 듯했다. 손발에 힘이 쫙 풀려 다시 변기 위에 앉았다. 자판 위에 손가락만 올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100%도 다소 섭섭하게 느껴졌는데, 매도라니. 말문이 막혔다.


- 어어, 회사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짐짓 의연하게 답했다. 내가 호들갑을 떨면 재원이 난처해할 걸 알았기에 자제해야 했다.


- 아니

,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고, 일단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하라네.


더 물어봐야 푸념밖에 안 나올 것 같아, 간단히 ‘알겠다’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봤지만, 뇌리에는 오로지 엔피스 생각뿐이었다.


‘뭐지, 보통 작전주면 몇 배씩 먹는 거 아닌가? 다른 세력이 나타난 건가?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푸근하게 기다리면 더 크게 먹는 거 아닌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올리기 전에 지인까지 털어내는 작전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맞다, 오늘 안과장이랑 약속 있었지.’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안성찬, 동갑내기 카운터파트였다. 오성이라는 상사의 과장이었는데, 이래저래 마음도 잘 맞고 성품도 온화해 최근 부쩍 가까워진 사이였다. 근처 중국집 어떠냐는 메시지에 바로 가겠다고 답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려가는 동안 송출되는 지수와 환율을 보는데, 불현듯 전반적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코로나로 시작된 불장은 테마 순환이 이례 없이 빨라, 한순간만 방심해도 낭패 보기 십상이었다. 기회비용까지 계산해야 하는 장이었다.


“1층입니다.”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나서는데 안 과장이 로비에서 반겼다.


“아이고, 과장님.”

항상 순박한 웃음과 함께 안부를 건네는 안 과장. 다크한 피부톤과 흰 치아의 대비가 선명했다.


“식당에 계실 줄 알았는데 로비에 계셨네요?”

“아, 미팅 끝나고 나오던 참에 같이 가려고 기다렸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맞은편에 재원이 서 있었다.


“여, 재원!”
“어! 주신!”

옆의 안 과장을 본 재원이 목례를 했다. 안 과장과 재원도 서로 아는 사이였다.


“재원 대리님, 결혼하셔서 그런지 얼굴도 좋아지고, 몸도 좀 나신 것 같네요.”
“뭐, 그런 것도 있고... 요즘 잘 되는 게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흥미로웠는지 안 과장이 물었다.
“오, 뭐 괜찮은 거 있나 보죠?”

바로 주식 얘기하기는 뭐해서 머뭇대는데, 오히려 안 과장이 되물었다.
“혹시 좋은 종목으로 돈 좀 버신 거 아닙니까?”

하긴,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주식 얘기가 대세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화학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엔피스 같은 시총 2천억 미만의 소위 ‘개잡주’도 심심찮게 도마 위에 올랐다. 나도 그렇지만, 안 과장도 후자를 별미로 여길 성향이었다.


“뭐, 사실 엔피스라는 종목이 있었는데요...”

그간의 여정을 쭉 얘기했다. 자고 나면 돈이 불어나 있던 행복했던 순간들부터, 오늘의 매도 사인까지. 안 과장도 감정이입이 됐는지 막판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아쉽네요.”
“그러게요. 이번에 한번 크게 먹으면 주식 끊으려고 했는데 말이죠...”

애써 눌러왔던 아쉬움이 복받쳤는지, 갑자기 사레가 걸려 기침이 나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코로나도 아닌데 기침이 나오네요.”

코로나 초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기침하면 이목이 집중됐다.

“과장님은 항체 있으십니까?”
“뭐, 검사는 안 해봤는데 한번 걸렸으니 있겠죠?”

“요즘은 키트로 항체 유무도 확인 가능하더라고요.”

“오! 키트가 그런 것도 돼요?”
“네. 항원 키트랑 항체 키트가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 유전업체 한 곳이 항체 키트를 개발해서 곧 FDA 승인도 받을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그런 업체가 있어요?”


이 순간이 필로스헬스케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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