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늘 되어 있었다.

이별은 늦을수록 좋은 줄 알았어

by 블루문

울 준비는 늘 되어 있었다. 울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례식 때도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지 않았고, 떠나는 그를 위해 통곡하지 않았다. 그렇게 쏟아내 버리면 다시는 그리워하지 못할까 봐 그랬나... 나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는 사람치고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맞절을 하고, 애도에 감사하며 내 맘 속으로 그냥 너를 잘 보내줄게..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나고 2년 동안에도 나는 가끔 그리움이 몰려와 혼자 몰래 잠깐씩 울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눈물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준비하며 이미 다 울었다고 생각될 만큼 눈물은 쉽게 쏟아지지 않았다.

눈물이 말라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도저히 멈추지 않는 이 눈물은 이제 와 뭘까...?





여전히 난 정의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이 눈물의 정체는 그리움도 슬픔도 미련도 애달픔도 아니었다. 뭘까...? 묻고 또 묻는다.


나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평화로운 일상을 앗아간 신에 대한 분노라고 하기엔 마음이 그저 고요했다. 그의 마지막 인사가 '사랑해'가 아니라 '미안해'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하기엔 그 안에 담긴 많은 의미를 알기에 서운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눈물은 수도 없이 밀려왔고, 대책 없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난 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우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슬프지 않다고 말하기엔 너무 슬픈 것 같고, 화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인 것처럼 화나 나는 모양이었다. 나처럼 하찮은 사람의 일상까지 가져가버린 신도 싫었고, 왜 난 이렇게 내내 혼자여야 하는지 유치한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추측이 난무하는 날들이다.

자기 마음의 실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날들이다.





난 이별은 늦을수록 좋은 줄 알았다.

시간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고 천천히 잊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2년은 너무 짧았고, 그 사이 차오르던 눈물은 나의 실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럴 만큼 너무 가득했나 보다.

들켜버린 것이다.

내가 잘 참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더 이상 괜찮다는 말로 나를 포장할 수 없음을.


이별에 좋은 때란 없다. 없었다.

이별이 닥쳐오면 그저 어느 날은 책임이나 의무 따위는 잊고 슬퍼해야 했다.

남편을 떠나보낸 청승맞은 여자처럼 불 꺼진 방에서 멍하니 그를 그리워했었야 했다.

나도 한번쯤 그런 걸 했어야 했다. 이렇게 터져버리기 전에.





쓸쓸함이다.

허전함이다.

안타까움이다.

원망이다.

한탄이다.


이름 따윈 상관없다.

그저... 눈물이다.





하지 않던 걸 해 보기로 했다.

일 하다가 흘러나오면 울고, 음악을 듣다가 흘러나오면 울고, 영화를 보다가 흘러나오면 울고...

하지 말라고 나를 다그치던 자신에게 해도 된다고 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울어야 멈출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이별이 이렇게나 지긋지긋한 눈물로 표현될지 몰랐지만,

이게 아마 내가 원하는 방법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2024년 12월, 나는 실컷 울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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