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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Nov 07. 2017

짧은 글

또다시 어둠 

마을에는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비가 세차게 내렸고, 모두들 비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다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닫고, 불을 지피고, 천천히 온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소년은 가만히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우산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버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조각칼과 조각을 완성하지 못한 나무 조각만이 들려있었다. 


바람은 하나둘씩 모든 것을 없애버렸고 

소년은 그저 가만히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가만히 

부서져 가는 것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무 조각의 파편이 손에 박혀 천천히 선혈을 자아냈고 

나무 조각은 비에 이미 반쯤 젖어있었다. 

소년은 한참 동안 그 나무 조각을 쳐다보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강하게 조각칼을 내리며 자신을 할퀴었다. 


"이제 모든 건 끝났어." 

허탈하게 웃으며 그는 나무 조각을 움켜쥐며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

그의 얼굴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뿌연 연기와 함께,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며,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불기둥은 하늘과 맞닿아 순식간에 어둠과 비를 없앴고 

그와 함께 불기둥 역시 사라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밖을 쳐다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그 누구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랐다. 


광장의 가운데 자리엔 그저 붉은기가 도는 칼날만 남아 있었다. 


다들 바람에 날아온 이상한 물체라 생각하며 건드리지 않다, 

하루 이틀이 지나며 그 칼날은, 그저 바삐 지나는 사람들의 발에 차이는 그런 물건이 되었다. 


세월이 꽤 흐르고 나서야, 소년은 흙투성이가 되어 이가 다 낡아버린 그 칼날을 조심스레 주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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