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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Jan 10. 2018

H의 하루  

그는 그렇게 우두커니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삐빅.삑"


졸린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그는 자신의 머리 옆에 널브러진 시계를 쳐다본다.

4시 30분. 슬슬 창문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해가 뜰 시각이었다.

그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조금 더 이 포근함을 즐기기로 했다.

이불 안은 지나치게 따스했고, 그의 침대 바로 위에 걸린 커튼 사이로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은

잔잔했다.


평소 같았으면 다급해져서 일어났을 그는, 피곤에 절은 채로 자신의 늘어난 잠에 감탄하며 1분 아니 5분만 더 누워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내려가겠다고 중얼거렸다.


"내려올 시간이야. 일 해야지."

문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그는 조용히 욕을 내뱉으며 서둘러 일어나며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으며 계단을 타고 뛰어내려 갔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쓴 위액이 나오려 하자,

그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지나치게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한동안 찡그리며 토하던 그는,

그저 평소에 가끔 일어난 일들과 비슷하다고 여기며 입을 헹구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갔다.


"자네 몸 상태는 괜찮은가?"

아침을 먹고 있던 한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뭐. 딱히 어디가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다네만. 왜 묻는 건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그는 자신의 신발끈이 풀린 걸 깨달았다.


"아 아니 여기 식중독 현상이 있던 사람들이 꽤 있길래. 자네도 어제저녁 같이 먹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지."


멈칫. 아주 순간적이었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신발끈을 묶으려던 그의 손이 잠시 떨렸다.

'그래서 그렇게 아팠던 건가. 이런. 또 돈 나가려나. '

그는 자신의 몸보다 약을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싫은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무시한 채 답했다.


"아. 나도 잠시 속이 안 좋아지긴 했네. 뭐 그래도 괜찮은 것 같군. 다른 사람들은 많이 심한가?"

"아니 뭐 그냥 다들 밤새 끙끙거렸다길래. 여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약 먹게. "

" 아. 고맙네. 근데 이거 어떻게 먹는 건가?"

"아니 이 사람아. 그것도 모르는가. 그냥 씹어먹으면 되네."


그는 고맙다고 다시 말하며 약을 황급히 넘겼다. 마치 씹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조급함과 함께 피곤함이 보였지만 그는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앞을 쳐다봤다.


떠들썩하게 자신들의 밤을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는 그는 외로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도 가까이 가서는 안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준비 다 된 거면 어서 나가자고. 벌써 5분이나 늦었어! 다들 일하기 싫어?"


문 밖에서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이미 준비된 도시락을 챙기며 서둘러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5시. 이미 날은 환히 밝아있었고, 거리에는 그들처럼 작업복과 모자를 쓴 사람들이 바삐 걸어 다니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비해 불어 보는 바람은 상당히 차가웠고, 그의 몸이 추운 듯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의 지끈거림이 심해졌고, 호흡이 서서히 가빠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도 비추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삽질을 해나갔다. 간절히 담배를 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직은 그럴 시간도, 타인이 보는 것도 싫었기에 그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편했다. 단체 속에 있더라도 명확하게 소외되어 보이는 그런 일들을 그는 선택을 했고, 자신의 잡생각을 지워줄 수 있는 힘든 일들을 먼저 진행했다. 삽을 움켜쥔 손에 힘들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쿵. 하고 삽이 떨어졌다. 사방으로 흙이 흩어지자, 주위에서 일하던 모두가 그를 웅성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거 이렇게 비실해서야 쓰겠나. 쯧. 정신 제대로 안차려! 다들 빨리 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본 상사가 그들에게 소리를 쳤다.


11시.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눈이 계속 찡그려졌으며 이미 옷은 흙과 땀에 절어있었다.


"다들 점심 먹고 다시 일하자고."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그는 자신의 점심을 집은채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3분 정도 걷다가 그는 이내 체념한 듯, 다시 작업장으로 걸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사람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지금 신성한 점심시간에 뭐하는 짓인가."


그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걸어왔다.


"D. 아 자네인가."

"자네인가아..? 지금 벌써 두 달이나 같이 밥 먹은 동료한테 그게 할 소리인가. 안 그래도 어제부터 끙끙 앓아서 방금 작업장에 도착하였구먼."

"뭐야. 많이 아팠던 건가."

"그래. 이 친구야. 그래도 나 아니면 자네한테 말을 걸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억지로라도 왔네. 하하. 빨리 밥이나 먹자고. H."

"그래."

"표정 좀 짓게나. 아니 뭔 사람이 이렇게 무표정이야. 나처럼 웃어야지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하. "


호쾌하게 웃으며 D는 그와 어깨동무를 하며 H를 끌고 나갔다.


"오늘 안 그래도 자네가 좋아하는 별똥별이 그렇게 무수히 떨어진다던데 알고는 있었나."

"음. 그런가."

"아니 별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자네를 위해 내가 이렇게 큰 정보를 주는데 반응이 왜 그리 시원찮은가."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계속 이야기를 하는 D와 그저 들으며 가끔 가다 고개를 끄덕이는 H의 모습으로 나뉜 채, 모래와 기계만 뒤덮인 곳에 약간의 활기를 불어주었다.


작업장에서 몇 분 안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뒤쪽에는 잘 안 보이지만, 무더운 날씨를 항상 잊게 해 준 넓은 그늘이 생기곤 했다. 그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게 모래 속에서 혼자서도 꿋꿋이  항상 거기에서 서있어, 외부인이 보기엔 감탄을 금치 못할 풍경이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그 나무는, 그저 공간만을 차지하는 그런 골칫덩어리였다.


우연찮게 그 그늘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항상 그 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던 그 둘이기에. 그들은 당연스레 그리로 걷고 있었다.


'접근 금지. 주의 요망.'


"아니 이게 뭐람."

D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표지판을 쳐다보며 베어진 느티나무 밑동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이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들은 이미 반쯤 잘려나간 나무를 보더니 다시 걸음을 돌려 도로가로 나아가 실내 식당으로 들어갔다.


11시 30분. 점심시간은 이미 반쯤 지나갔고 식당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식중독 때문인지, 가득 찬 사람들 때문인지 욱신거리는 속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로 H는 D의 뒤를 따라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빈자리를 찾았다. 겨우 자리에 앉아 점심을 꺼내 든 그는 벌써 주위의 인부들과 떠들고 있는 D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욱."

단 한 숟가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울컥 먹은 것을 봉지 안에 토한 H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머리가 웅웅거렸고, 속은 메쓰 거웠으며 다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문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잠시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더니 다시

그런 그를 보던 D는 걱정스럽게 밖을 쳐다보더니, 이내 자신의 점심을 정리하더니 H가 뛰쳐나간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동안 돌아다니던 D는 표지판 뒤 느티나무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토하는 H를 발견했다.


"자네. 괜찮은가. 어디 아픈 게야?"

"..... 헉..."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토해도 괜찮아. 내 두드려 줄 테니."


H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들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느티나무를 붙잡고 있던 그의 손도

계속해서 떨리며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일단 여기를 좀 빠져나가서 쉬자고. 여긴 자칫하면 깔려 죽는다고. 속 안 좋은 건 에어컨을 쐬면 나아질 거야."

D는 H를 안듯이 끌어당기며, 다시 건물 안으로 그를 데리고 오려고 했다.

H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듯 발버둥을 치다, 다시 한번 왈칵 토하고 나선 정신을 잃었다.


그런 H를 보며 사람들은 그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며, 식중독이 심하긴 했다며 수군거렸다. 쓰러진 H 주위로 둥글게 사람들이 서서히 몰려들었고, 그 모습은 마치 견고한 벽이 점차 조여드는 듯했다.


"뭐 어디 좋은 구경이라도 났어! 왜 다들 보고만 있는 건가. 빨리 의무실로 옮기는 것 좀 도와주게!"

D의 외침에 사람들은 그제야 뿔뿔이 흩어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D 가 H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계속해서 속삭이며 쳐다보기만 했다.


4시. 의무실은 온톤 하얀 벽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군데군데 때가 덮여있었다. 방 안에는 별 다른 도구는 없이 간단한 응급처치 약과 반창고 등 만이 있었다.


"삐빅. 삑"


익숙한 알람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주위를 둘러보곤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그의 안색은 훨씬 좋아 보였지만, 여전히 약간의 떨림이 진행되고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어 밖을 쳐다보았다.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든 채,  D가 걸어왔다.


"괜찮은가 자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놀랐잖아."


"괜찮아. 더워서 그랬나 보지. 아 음료는 고맙네."

D 가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며, 그는 단조롭게 고맙다고 말했다.


"슬슬 다시 일하러 가야겠군."

D는 황급히 중얼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 H를 말렸다.

"자네 무려 4시간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내가 휴식시간이니 간신히 찾아왔지. 정말. 후. 더 쉬게."

"아냐. 이미 쉴 만큼 쉬었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았어. "

"남긴 뭘 남아 이사람아. 나를 봐서라도 좀 쉬게. 응? 내가 자네 일까지 오늘 대충 해놓을 테니 걱정말게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앉은 H는 D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왜 내가 할일을 한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지. 내가 할테니. 자네야 말로 휴식 시간을 좀 누리게. 나 때문에 점심도 못 먹은 것 같은데."


"그런거 아니니 그냥 걱정말고 쉬게. 빨리 나아야 내일 다시 일하지. 자네 이거말고는 돈 벌 수단도 없다며. 일단 오늘은 병원 가고. 내가 이미 말 해 놨으니, 어서 검진이나 받게."


"...."


"어서."


D는 H를 떠밀듯 내보내며, 택시를 잡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ㅁㅁ 병원으로 좀 빨리 가주십시오. 이 친구가 많이 아파서 그러니까. 돈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곤 H 를 쳐다보며 짐짓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병원 다녀와서 연락하게. 내 자네 때문에 휴식 시간도 날렸으니 이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할거야. 안 그러면 정말 화낼테니 그리 알아두게. 난 자네를 잃고 싶지 않아."


"...."


"그럼 무사히 다녀오게. 나중에 봅세."


5시. 띵. 4층입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병원은 불이 꺼진 채로 어두웠다.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한 둘씩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H는 문 앞에 적힌 안내문을 읽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금일 진료 시간 오후 5시까지 입니다."


어차피 병원에서 숙소까지는 2시간이 걸리는 것을 아는 그는, 잠시 그 고요함을 즐기기로 했다.

유리문 앞에 웅크리고 앉은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아진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건가. 정말 쓸모 있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군."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던 그는 집에 두고 왔음을 깨닫고는 이내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툭하고 가볍게 털었을 뿐인데 그의 바지에서는 흙먼지가 휘날리며 모래가 한껏 떨어졌다.

쓴웃음을 짓던 그는 이내 아까 봐두었던 편의점으로 가 담배를 사곤 병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힐끗거리며 시계를 확인한 그는 6:00 라는 숫자를 보곤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아무것도 한 것은 없었지만, 벌써 1시간이 흘렀다.


그의 몸에선 흙과 땀과 시큼한 위액 그리고 담배 냄새가 약하게 풍겨졌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 그는 자신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가방을 맨 학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덜컹거리며 강을 지나는 지하철의 밖은 벌써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모두 오늘 밤 떨어질 별똥별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다. 어디가 제일 잘 보인다는니, 어떤 소원을 빌거라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그의 고막에 부딫혔다. 이내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했다. 어차피 2시간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 병원에선 뭐라던가."


"그냥. 별말 안했네."


"그게 무슨 소리야. 약은 뭐 받은거 없고?"


"그래. 이만 들어가지. 피곤한데."


"아 그래그래. 자네 배는 안고픈가. 점심도 거르고서는. 속은 어때. 몸 상태는 괜찮은가?"


"괜찮아. 정말로. 그러니 그냥 들어가지."


H는 단호하게 D의 말에 대답하며 서둘러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아예 멈춰버렸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뭔일 있는겐가. 곧 있으면 집인데. 들어가지."


"아니. 먼저 들어가게. 난 조금 있다 들어가려고. 그래도 이왕 별똥별은 보고 들어가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문까지 D와 함께 걸어갔다.


"그럼 나도 같이 있겠네. 자네가 걱정되서 말이지."


"자네도 내가 혼자서 별 보는걸 더 좋아하는건 알지 않는가. 그냥. 오늘은 혼자서 보고 싶네. 먼저 들어가게."


".....그렇지만.."


"제발. 부탁이네."


그제서야 D는 마지못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사이로 보인 D의 모습에 H는 순간적으로 그를 불렀다.


"D"


"음? 왜 불렀는가. 역시 나도 같이 가는 게 맞는 것 같지? 아니면 그냥 들어와서 침대에 눕고 싶은 거지?"


H가 그런 D를 보며 잠시 망설이며 중얼거리는 동안, 문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아니야. 별 거 아닐세. 그냥 오늘 밤은 별이 더욱 예쁜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보려고 했네. "


"그게 뭐야 이 사람아. 밤하늘이야 항상 예뻤지. 싱겁기는. 별 구경은 적당히 하고 빨리 들어오게. 괜히 내일 아침에 피곤하다고 후회하지 말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이. 평소엔 시간 아깝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놈이 항상 별만 보면 저렇게 변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할 텐데. 하하. "


H는 그런 친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아니. 방금 자네 웃은 거 맞지? 내일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천하의 H가 나한테 웃어주다니. 자네 정말 다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D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H를 놀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고... 그냥 들어가서 자게. 수고했네 오늘도. 나도 곧 들어갈 테니 나중에 보자고."


거의 다 닫힌 문 사이로 H는 자신의 할 말을 한 채 뒤를 돌았다. 그런 H를 바라보던 D는 웃으며 뒤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릴테니 돌아오게. "


문이 완전히 닫히자 H는 그 문 앞에 서서 밤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머리의 지끈거림이 심해졌고, 더욱 거세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웃음기는 사라진 채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H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젠장. "

찰칵거리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H는 천천히 다시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그의 모습 뒤로는 연기만이 한동안 남아 있었다.


밤하늘은 칠흑 같이 어두웠고, 구름만 가뜩 긴 채로, 별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더 어둡네."  


그 날 신문에는 30대 인부 한 명이 이미 반쯤 부러진 나무 밑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작업장에서는 D를 제외한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며, 사고를 칠 줄 알았다며 수군거렸고,

D만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피로 얼룩진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할 일이 밀렸는지, 작업장으로 서둘러 돌아갔고,

이내, D 역시 다시 일하라며 소리친 상사의 목소리에 이내 발걸음을 돌려 작업장으로 향했다.

원래 그림자가 있던 곳은, 피가 스며들어있었다.

그 피의 흔적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햇빛 때문에 모래 사이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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