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랑 Nov 17. 2017

거리감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천천히 각자의 일상으로.  

"나 그래도 걔랑 연락 안 한지 꽤 된 것 같은데. "
"저기요 아저씨.. 너 나한테 이틀 전에 걔랑 연락했다고 말했거든."
"아 그런가.. 뭐 그래도 그 정도면 꽤 된 거지 뭘. "
"너 나랑도 그렇게 연락하거든 멍청아"
"걔랑 너랑 같냐 에휴"
"하긴. 매일 연락 안 하는 게 신기하다. "
"그러게. 지금 연락해야겠다. 뭐 하고 있으려나 궁금하네. "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주관적인 단어임이 틀림없다.

누군가에겐 하루가, 누군가에겐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아니면 정말 평생에 한 번이  

오랜만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 시간 역시 오랜만이 될 수 있다.


그건 아마 예전의 거리감과 지금 이 시점의 거리감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문뜩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정말로 상반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헤어지자고 말을 했던 날,

"우리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일주일도 넘었어. 근데 별 생각이 안 들더라 나는."


그리고 하나는 방금까지 계속 끌어안고 있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막 몸을 돌리자마자

"집 가기 싫다. 벌써부터 네가 보고 싶어 지고 있어."

였다.


정말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만들어내며, 너에게 통하지 않을 그런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면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했던 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라는 그 사실이 새삼 놀랍게 여겨졌다.

꿈에 네가 나와서 울면서 멍하니 잠을 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멀쩡하다는 사실이 아팠다.


아마 나는 너와의 거리감에 이미 익숙해졌었나 보다.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내뱉은 것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뛰어나갔던 적도

틈만 나면 안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눈이 마주치면 씩 웃으면서 뽀뽀를 하려 했던 것도  


그 모든 것들이 이젠 하나의 프레임에 고이 담겨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어가면서

이젠 내가 차마 공감하지 못할 감정들과 단어들로 뒤덮여 있다.


예전엔 하나하나 걱정되었던 것들이, 궁금했던 것들이, 알고 싶었던 것들이

서성거리며 괜히 돌아보면서 기웃거리던 것들이 줄어들고,

이제는 그러려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하겠지, 어떻게 살고 있든지 이젠 관심 밖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은 너의 일상이 내게 와 닿지 않자


그제야 너와의 거리감이 실감 나면서 동시에 무뎌졌다.


우리 한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
잊을 때도 됐는데
기억에 살만 붙어서 미련만 커지네
되돌아보면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데
하필 전부 명장면이네
기억나?
....
가랑비 같은 슬픔이라 위로했지만
여전히 젖은 얼굴로 잠에서 깨
계절은 무심코 변하고 앞만 보는데
난 서성이네 여태
시간도 버리고 간 기억뿐인 네 옆에
-연애소설,  에픽하이

다만 우리의 걸음은 이젠 더욱 빨라진 채로 감흥 없이 기억의 장면들을 지워버렸을 뿐,

한 때 명장면이었던 시간들은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감정들과

담배가 만들어낸 뿌연 안개로 뒤덮인 기억들로 전락해버렸고,

계절보다 빨리 변해버린 것은 우리의 감정과 거리였다.


천천히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각자의 길을 걸었던 그 날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거리는 점차 멀어져 갔고 

우리는 그 거리감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다시 그 기억들을 주우려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허상뿐인 공간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점차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