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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Dec 09. 2017

작별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잘 지내    

그동안 내가 예전에 쓴 글들을 쭉 읽어봤어.

이땐 이랬구나, 그땐 참 많은 것들을 느꼈구나.

참 아팠겠구나,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 것들로 고민을 했구나.


정말로 그 raw 하다고 해야 하나.


조금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들도,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감정들도,

그 순간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도


그냥 참 다양한 것 많이 느꼈구나.

그래도, 적어도 내가 무수히 남긴 발자국들이 어느 정도는 길을 만들었구나 싶었어.


동시에 참 많이 미안해지더라.

이건 절대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었을 텐데

어떻게든 죽어가는 친구 하나 살려보겠다고

무작위로 막 던지는 것들을 받아주던 사람들이 생각났어.


상당히 아프고 듣기 힘든 감정 들이었을 텐데

참 강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질문은 "그래서 뭐가 문젠데?" 였어.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취해 그걸 놓지 않는 것에 급급했지

정작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그래서인가 나도 뭐가 도대체 문제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가끔은, 아 난 내가 그 힘듦에서 빠져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나는 사실 그 고통이 어느 정도 내 행동들을 정당화시켜주기를 바라는 건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


처음으로 제삼자에게, 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무엇이 문제였는 지를 설명하려고 했어.


말이 안 나오더라.


머리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는데

목에서 막히더라고.

그래서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어.


미안하다는 말.

그건 내가 그때 당신들에게 했어야 하는 말인데.

정작 당신들에게는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 않고

괜찮다고. 알 필요 없다고. 이랬었고, 여전히 그러고 있었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도, 몸을 덜덜 떨면서 담배를 펴도, 진탕 술을 먹고 토해도

그때마다 괜찮다고, 아직 시간이 있다고, 말해보라고.

그때마다 참 내가 싫었어.


짐이 되는 것 같아서 싫었고, 선택과 관심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었고

불안정한 내가 싫었고, 나는 왜 지나간 것들에 아직 미련을 두고 있는지

나는 왜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에 고민을 하는지, 나는 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지

나는 왜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지, 나는 왜 그 어둠을 증오하면서도 계속 그 주위를 배회하는지

나는 당신들이 만드는 행복한 그림 속에 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건지


그리고 그 모든 게 다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어.

뒤틀린 것들을 사랑했고, 결핍된 것들을 사랑했고, 채워지는 것들을 두려워했고, 모순들을 쌓아 올렸지.

 그 속에서 살아가며 비참한 기분들을 즐겼어.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을 증오했어.


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어.

나를 너무 잘 예측하면서도, 어린애 같이 구는 나의 행동에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게 싫었어.

그래서 스스로를 닫아 내리고, 혼자서 삭히다가 터지고, 다시 알리고 그 모든 걸 반복했어.

나는 나를 죽이고 그 속에 타인들을 담아 넣었어. 그렇기에 나에게 주관은 없지.  


미안해. 나보다 나를 더 아껴준 사람들에게.

나보다 나의 감정을 더 잘 받아준 사람들에게.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도와주려 한 사람들에게.


미안해. 거창한 사연이나,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일들이나,

누가 들어도 오열할만한 이야기도 없는 데

매번 이렇게 나약해지니.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었어.

조금은 더 믿을 만한, 기댈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더 이상은 글을 쓰지 않기로 했어. 적어도 몇 달 간은.

적어도, 당신들에게 내가 조금은 더 나아진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 그 순간부터는

느리게 한 걸음씩 걸어가더라도 지키려고.


미안해. 많이. 고마워 많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수고했어.

그러니, 나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지내.

한 사람씩 이야기를 써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끝 같잖아.

다시 볼 텐데. 그러니 그때까진 작별이네.


안녕. 다음에 봐.


작별(作別) [명사] :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다



"나의 부모님보다 더 슬프게 우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정말로 미안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정들이라. 그냥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나의 삶에 있었기에, 나는 이까지라도 올 수 있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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