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랑 Aug 01. 2018

푸르던 봄, 그 이후

그는 H라 불렸다.

"생각보다.... 긴 여정...이었습니다."


앞으로 걸어나간 그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울리는 낮은 목소리로 관중을 압도했다.


단상 위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은 각지각색이었지만, 모두들 집중한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않았다.

 

"아니 이게..무슨일이란...말입니까..."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회색 수트와 검은색 타이는 단정해보이면서도 무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모두들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은 채로, 상당히 격식있는 모임임을 알  있었다.


그는 목이 매이는지 잠시 물을 한모금 마시곤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매우.... 아프고 힘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이자리에 오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비단 저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군..요"


"으흑....아니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만해 이제..장난 그만 치고.."


잠시 말을 멈춘채 천천히 단상을 쓰다듬으며 그 매끄러운 느낌을 음미하던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흑단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목재입니다..

한때 잠시 취미로 목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을정도로 나무 내음을 좋아했었는데

아이러니 하게 흑단에 빠져버렸지 뭡니까."


그는 쓴웃음을 잠시 지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은 이미 붉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꿈 말입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바란 것은... 사실 정작..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간사해서... 조금만...불안해도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조금만... 희망이 보여도.. 휙휙 마구잡이로... 인생을 뒤흔들더군요.."


"이제 슬슬 나가시죠.. 담배나 한대 피고오죠.. "

"조금.. 조금만 더 있다 가지..."

 

그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멈추었다.

눈이 부신듯,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참.. 하고 싶은게...  많았어서 그런가...

쿨럭쿨럭.... "

  

별안간 그의 기침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도, 그 누구도 감히 그의 곁으로 가 그를 부축하거나 도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몇 번의 쿨럭거림이 더 지나고선 후에, 그는

 조금은 멋쩍은듯 다시 목을 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참...이거 이렇게.. 좋은 날씨에 여러분들을 모아놓고 죄송하군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지만, 말 재간이 없는건... 여전한가 봅니다."


희미한 미소를 띈 채로 그는  단상 옆으로 의자를 글어다 놓은 후 앉고는 관중들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러분들을 만나 참 행복했습니다.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느꼈고, 꿈 꿀 수 있었습니다. 참 못났었지요. 저는. 참으로도 어설펐고, 사실은 여러분들이 저를 조금은 더 편히 대했으면 했는데... 이거 괜한 짐만 된거 아닌가 싶습니다. 허허.. 뭐.. 그랬더라면 정말... 미안합니다."


그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손을 물끄럼히 쳐다보았다. 이상하리만치 모든것이 또렸해보였지만, 그의 손만큼은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 ㅇ..아니 방금.. 손이.. 손이..."


습관처럼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그는 관중들 한명 한명을 바라보며 웃었다.


"미련이 더 이상 남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후회가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은 그 미련이라는 놈이.. 이렇게 눈 앞을 떠도는데.. 그때는 참 이상하리만치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도 참 많은 미련들이 기억과 추억으로 남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실 조금만 더 ... 시...ㄱ..아니 실..력이 있었더라면 아마 여러분들에게 한장..한장씩 사진을 나누어 드렸을 텐데 말이지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사진이라는 거 말입니다. 음...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한때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에 맞는 글을 써내려가고 싶었습니다. 내 친한 사람들한테 직접 시도 한편 써주지 못할거라면 이거..뭐.. 어디 사는 맛이 나겠습니가. 하하.."


계속해서 떨리는 그의 손을 보며,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손을 내보였다.


"근데.. 뭐.. 어느 날 부터인가 이렇게 손이 마악...막..떨리는 날..들이..오더군요. 처음에는... 뭔가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잠잠해지기도 하고 해서 별 다른 신경을 안썼었지요. 세상에는 참 놀라운것들 많지요. 저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향기와 향기에 어울리는 그림으로..합니다. 그래서인가 아까 말했던 사진에 그리도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세상에는 참 예쁜 색이..많았고 제 삶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제발....  아니 왜.. 하필.."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방 안은 오직 그의 구둣소리만이 울렸다.


"되고 싶은게 많았습니다..어릴 적 누구든 꿈을 꾸었던 소방관도 되고싶어했고.. 사실 소방차도 되고싶어했지요 허허.. 뭐..그러다 실험하고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게 좋아 과학자라는 꿈을 키워나가다, 어느 날은 또  변호사가 너무 멋져보여 그 꿈을 키워나갔었지요. 으래 중고등학교 쯤 가면 다시.. 하나 둘씩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느끼고 하다가 그제서야 컴퓨터와 그 뭐 발명하는거에 좀 황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가고 나서는..뭐 ... 조향사도 되고싶어했고.. 참 왔다갔다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내 항상 잃지 않았던 생각은 남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 만큼 돕자 였던 것 같습니다. 그냥..누구든 편히 와 쉴 수 있는 그런.. 그런 사람이었으면 했습니다."


"이제.. 그.."

"조금만.. 조금만 더 봐요.."


"이거 말이 너무 길어졌군요... 그래도..행복하십시오.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문을나가며 조용히 그들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걸 조금더 일찍 말해주지 못해서,.다음 생엔... 나 같은 사람때문에 아파하지 마세요.. "


이제 그만 보내줍시다. 많이 힘들어했지 않나요.


그는 H라 불렸었었다.


분향실 특1호 고인명 H 상주 ㅇㅇ



 






 


매거진의 이전글 흘러가버린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