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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Aug 22. 2018

전달되지 않을 편지 - 기억

생일 축하한다고 했었지.

사실 작년 이맘때쯤 내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고는 "아 맞다.너에 대한 글은 이제는 다시 쓰지 않기로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었다.


나조차도 까먹은, 내 기억 속에도 안타깝지만 남아있지 않던 너에 관한 그 글을 너는 기억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아이러니 했다.


아니. 이 뿐만 아니라 참 아이러니 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너에게 한 약속을 핑계로, 잠이 안오는 밤, 내가 뒤척이면서 떠오른 기억들을 한번 말해주려 한다.  이건 네가 궁금해 했을, 너를 떠나고 나서의 나 .


나는 아쿠아리움을 참 좋아했다. 그 속에서 예쁜 물고기들을 보는 것도 좋았고, 바다거북이나 상어, 가오리 등등 색이 아름답게 뒤섞이면서 어우러지는 그 광경은 내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자 내가 지니고 있는 동심중 하나였다.


근데 그거 아냐. 나 이제는 그런데 안가는거. 여전히 어딘가를 놀러가거나, 뭔가 일정이 비면 꼭 가보고 싶은 곳에 아쿠아리움이 있는데 근데 정작 머릿속으로 아 언젠가 가야지. 라고 생각만 하고 사실은 그 주위로는 절대로 여행 계획도 안짜는게 습관이 되버렸어 이젠.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투덜댔던 - 연애하기 전의 우리가 갔던 - 나는 너한텐 관심이 없고 지가 좋아하는 애 생일선물 고르는 데 정신이 팔렸다고 했던. 그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라면 믿겠냐. 상어 인형 하나 들고는 좋다고 안써주던 편지까지 써준 너는 내게 남은 유일한 네 편지가 그거라는 걸 알까.


우리가 싸우고 화해했던 독일. 독일도 그래서 나는 별로 안좋아해. 영국도 그렇고. 네덜란드도 그렇고. 벨기에도 그래. 네가 핸드폰을 식당에 놓고 왔다면서 엄청 당황해하면서 울먹이던게, 그 때 깜빡이던 독일의 신호등이, 그리고 그 신호등이 그려진 내 셔츠  - 사실 이젠 어디있는지도 모르겠지만 - 그 순간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 와 식당에서 먹었던 그 고기 진짜 맛없었는데. 차라리 그때 너랑  J랑 먹었던  피자에 맥주가 훨씬 더 나은 것 같아. 그러게. 나 너랑 술 마신 적이 있구나. 몰랐었는데.


 나는 한번도 네가 배경화면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고 너 역시 그 여행동안은 항상 내가 배경화면이었지. 기차 타서 몰래 서로 씩 웃어주고 그랬던게 그랬던 과거의 내가 참 많이 떠올라. 휴게소에서 너 몰래 지갑 사고, 기념품 산다고 엄청 고생도 했었지. 아마 넌 다 알았을테지만 뭐 어쩌겠어. 나는 항상 그렇게 고집불통이었는데.


그리고 예전에 내가 너 데리고 간 그 정말 작은 장남감 가게. 너는 분명 내가 후회할거라 했었지만 나는 끝까지 걸어서 갔었지. 다시 한번 가봤는데 진짜 작긴 작더라. 그 거리를 다시 걷게 된건 애들이랑 술 마시려고 포차 찾다가 가게 된거였는데. 뭐. 여전히 휑하더라. 딱히 좋은 데이트 장소는 아니었지. 그래도, 나름 너네 집부터 내가 예전에 많이 다니던 학원가, 식당 , 주변 건물들 그런건 다 외웠었는데. 너네 집 강아지 보고 날 물라고 하던 것 도 말이야.


그거 아려나. 나 요즘은 개 무서워 해. 아 뭐 정말 작으면 그냥 흠칫하고 놀라기만 하는데. 그냥 웬지 모르게 잘 안 맞는 것 같더라고. 어디 카페 같은데 가서도 단 것만 시켜 먹었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잘 안 땡기더라고.


뭐 그렇게 지냈어. 너는 여전히 나를 보면서 변한게 없네라고 말하겠지만, 너도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우리.


뭐 이미 지난 일들은 그냥 안줏거리로 삼고, 잘 살아라. 알아. 너 잘 살거라는 거. 잘하잖아 그런거.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나는 내가 했던 실수들을 다시 반복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잘 모르겠다. 이번도. 아 이러다 정말 갈 곳 없어지는거 아닌가 몰라.


쨋든. 해피 버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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