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려운 것은 관계 속 대화이다.
자기소개.
글을 쓴다는 것.
말을 한다는 것.
특정한 단어들을 통해 나를 보여준다는 것.
내게 요즘 들어 가장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말해보라 하면 아마 자기소개 혹은 대화가 아닐까 싶다.
한정된 시간 내에 쏟아내야 하는 정보들의 판단 속에서
어느 정도의 선으로 타자에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내가 아는 내가 과연 남들이 보는 나인지,
과연 그들은 나에게 그만큼 관심이 있는지 등
무수한 고민이 든다.
내가 나온 학교, 전공, 국적, 나이를 제외하면 나는 과연 누구인지.
내가 지닌 흥미들은 그저 관심에 그치는 것뿐인지 아니면 정말 누군가와 심도 깊은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지.
내가 가진 고민들은 그저 철없는 한 아이의 망상일 뿐인지.
내가 과연 당신들의 시간을 뺏아도 되는 걸까.
우린 과연 정말로 친한 걸까.
나는. 너는.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아는 걸까.
그저 가면들의 속삭임인 걸까.
술기운이 들어가면 조금 더 삐뚤어진 가면을 쓴 채로 눈을 가리고 하는 도박인 걸까.
겉에서만 빙빙 도는 그런 대화 따위. 아니면 그들은 내가 너무 불편한 걸까.
우리의 대화는 집단적 독백인 걸까. 아니면 화자와 청자로 나뉜 하나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마저도 아닌 자기소개의 끝없는 연장선일까.
안녕. 뭐해. 잘 지냈니?
뭐하고 살았냐. 아.
그래. 그렇구나. 침묵.
바뀌지 않는 뻔한 레퍼토리.
예전에는 참 이 말 저말 잘하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는 단어들의 의미도 말도 모두 퇴화되고 퇴색되어
그 짧은 침묵이 그저 불편한 그런 상태일 뿐이다.
점차 각자와 각자 그리고 기억으로 점철된 하나의 이야기.
겹치지 않는 그림자들의 인사와 멀어져가는 발자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