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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Feb 28. 2019

D의 하루.

의미 없는 시간들의 연속. 

그는 조용히 자신의 문을 닫았다. 

찰칵.


손에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채, 그는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자신의 방을 보았다. 


나름대로의 정리를 하려고 했는지, 그나마 걸려 있는 옷가지들과 

서랍장 위에 꽂혀있는 책들이 보였다. 


그의 책상 정 중앙에는 몇 권의 책들과 공책, 필기구, 휴지, 안경딱이, 열쇠, 시계 등이 놓여 있었고 

오른쪽 끝에는 쓰다만 일기장과 여권이 올려져 있었다.  


깜빡이는 모니터를 쳐다보며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41분. 


별 다를 것 없는 날들

별 다를 것 없는 순간들. 


그는 스스로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미쳤다고 확신했다. 


방을 나서 거실로 간 그는 무심코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라이터를 확인했다. 

금연을 한지 꽤 되었는지, 그의 라이터 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곤, 책상 위에  김이 나는 자신의 찻잔을 바라보았다. 


무료하군. 그는 중얼거렸다. 


무료한 시간들 속에 그가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해 본 일들은 다음과 같다.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기. 

친구들을 불러내서 집 앞에서  술 먹기. 

멍하니 유튜브와 각종 게임을 하기. 

약과 환락에 빠져보기. 


하지만 그런 것들도 그에게 더 이상 새로움을 주지는 못했다. 

의미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다고, 그는 생각했다. 


담배는 그를 오히려 더 차분하게 만들었고, 술은 애초에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그는 남들을 관찰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타인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평범한 것인지. 친구들은 항상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미쳤다고 했고 그는 수긍했다. 그는 딱히 남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임과 동영상은 그에게 시간을 잊고 살 수 있는 수단이었다. 다만, 여전히 그 시간들에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약과 환락에 빠져드는 건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렇다 할만한 쾌락을 느끼지도, 우울에 빠지지도 않았기에. 애초에 그가 필요한 건 그러한 감정들이었던 건 아닐까. 쾌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게 쾌락이야라고 한들 알아듣겠냐는 말이다. 몸을 섞는다 한들, 그 온기와 감각은 잠깐뿐, 사실 그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알던 사랑이 무엇인지도 헷갈려하던 참이었다. 


몇 분을 고민하다 그는 결국 근처 서랍에서 면도칼을 꺼내 들었다. 이거라면 해결해주려나. 

대충 물티슈로 커터칼과 자신의 팔을 닦아내곤, 그는 천천히 칼날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처음 시작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단순히 슥 하고 긋는다고 해서 바로 베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그의 가죽은 질겼다. 몇 번을 더 시도한 끝에야 그는 드디어 첫 선혈을 보았다. 베였다는 느낌은 아주 잠시, 별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너무 얕게 해서 그런가.라고 중얼거리며 그는 조금 더 깊게 베어보려 노력했다. 역시 별 차이는 없었다. 약간의 따가움뿐이었다. 


침대 위에는 빨래 더미와 옷가지들, 또 몇 권의 책 그리고 동물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이불 위에서 기약 없는 꿈을 꾸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룸메이트들이 신기했다. 

자신들의 방에서 즐겁게 지내며, 다양한 요리를 하고, 다가올 날들이 기대된다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이 참으로 신기했고 부러웠다. 그는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퍼질 때마다 머리가 아파왔다. 

그에게 있어서 음식이란, 정말 배가 고플 때 살기 위해 먹는 것. 그 정도였다. 물론 그런 그도 가끔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는 했다. 먹고 나서 항상 울컥하곤 다시 올라온 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고, 두 번째는 항상 반 이상은 남기거나 싸들고 왔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에게 돈을 쓸 때 구역질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마치 쓸모도 없으면서 빌어붙어 먹는 존재랄까. 

그러나, 그는 타인과 있을 때에는 항상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걸치고 나갔다. 마치 자신이 멀쩡한 사람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이. 


남들은 그에게 그가 바쁘게 산다고, 꿈이 있는 것 같아서 멋있다고 했지만, 그는 그저 겸허히 웃을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이었지만, 괜히 발버둥 치려고 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단지 그가 계속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자신은 32살 이전에는 죽지 않겠다는 꽤나 깊이 박혀 있는 생각과 부채감이었을 것이다. 빚과 빛. 그 두 가지는 가끔 그를 미친 듯이 괴롭혔다. 우울한 감정은 전이되기 마련이었고, 예전에는 극도로 기피했을 우울함마저 그는 이제 그리웠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괴로움이라는 게 뭔지 헷갈린 다는 그 사실이 그를 더 좀 먹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이 놀았고, 의미 없는 시간들을 허비했고, 동시에 한 게 없다며 불평을 했다. 뻔한 이야기 뻔한 결말이었다. 전형적인, 걱정만 많고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 그게 그였다. 해야 할 일들이 닥쳐왔고,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서 뒹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피해 항상 픽하고 잠에 들었다.  


그의 방에는 창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방문을 닫고 잠에 들 때면 항상 형광등을 켜고 잠에 들곤 했다. 

마치 어둠에 잠식되지 않으려 허우적거리듯이. 


잠에 들면 그의 꿈에선 항상 혼자 남겨졌다. 그게 바다 속이든, 도시 한 복판이든, 공항이든.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다들 떠나갈 것을. 그리고 동시에 그를 걱정하지 않을 것을. 오히려 그게 조금 더 마음이 편했다. 


그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당장 닥쳐오는 내일의 일과를 생각하며 다시 그는 글을 적어내려 갔다. 

깜밖이는 커서와 자신의 팔에 남겨진 상처를 보며, 그는 글자들을 적어내려 갔다. 


언젠가는 다시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이 그의 첫 문장이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42분. 

12시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의미 없는 시간들은 너무나도 느리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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