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대의 창가로 달이 들어왔다

2021년 6월

by 황필립

버스에 승객은 나 혼자였다.

눈부신 햇빛이 버스의 창문을 통해 들어와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버스 안을 비추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그림자들의 형태와 동작을 관찰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간판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빛바랜 간판과 먼지에 덮인 물건들이 널려있는 불 꺼진 가게들만 나타날 뿐이었다.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진찰을 받을 때도 나는 과거에 있었다.

끔찍한 일은 악몽이 되어 찾아오는데 다시 그 악몽에 시달리니 과거에 사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필요시에 먹는 약을 변경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약봉투를 열어 확인해보니 나에게는 부작용이 있는 약이었다.

쿠에티아핀정이었다.

그 약을 먹으면 누군가 내 다리를 톱으로 자르는 것만 같아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불안이 나를 떠나길 기대했으나 이번에도 실패가 돼버린 듯하다.

그토록 바라던 달은 침대의 창가로 들어와 푸른색 이불을 너무나도 밝게 비추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