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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연못 Feb 18. 2022

암실-카메라 옵스쿠라

2021

이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플 수 있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했다. 가진 것이 없는데 아프다는 건 내다 버려도 아무도 수거해가지 않는 물건이 되는 것과 같았다. 가진 것 없이 아프면서도 밥도 먹고 잠도 자며 살아간다. 하릴없이 바쁜 하루가 저물어 가면 밥을 먹었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이 죄스러워 고개를 숙인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가 죽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확인하지 않았던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통장잔고를 보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순수한 행복, 희망은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다가와 사람들을 지탱해주고 사라지는 그들에게도 불순물은 섞여 있었다. 그들은 무자비함과 권리를 뽐내며 교묘하고 교활하게 속이기도 한다. 나의 희망은 눈보라 속에서 킨 성냥 같았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도 그는 다음날 나의 하루가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다. 잿빛 구름이 낀 하늘 아래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본 인간들이 우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새들은 이미 몸을 숨긴 것처럼.


하지만 허물어진 과거와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구멍에 파고들 수는 없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병든 육신에 병든 정신까지 가지고 있더라도 삶에 대한 복잡한 책임감은 내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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