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3일의 일기
사람들을 사물로 인식할 만큼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지는 관찰력의 부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빛과 소리의 자극에는 극도로 민감해져 간다. 조금의 빛과 미세한 소리에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일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자꾸만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나에게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무언가를 숨기려다 들통난 것처럼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내 이름이 낯선 것이 되는 것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작은 사건이다.
분노와 슬픔의 부유물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것들을 건져내기 위해 강을 헤엄쳐 다닌다. 비리고 뜨거운 부유물들에 엉켜 강둑을 나오면 나는 내 하루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뒤척일 때면 내 살가죽에 남아 있는 뜨겁고 눅눅했던 물비린내가 올라온다. 손톱 끝에 낀 녹색의 찌꺼기.
나 자신이 대한 혐오감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내 숨통을 조이고 목구멍을 막으며 증식한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퇴적물들이 성장하여 이룬 숲.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분노로 붉게 얼룩진 고통과 슬픔이 피어나 울창한 숲을 만든다. 숲의 공기에 질식할 것만 같다. 내가 만든 이 숲에서 나는 나갈 수가 없다. 본질적인 두려움이 숨어 있는 땅이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죽을 것만 같다.
나에게는 오래된 환상들이 있다.
그것이 결국 꿈이 아닌 환상으로 끝나게 된다면 나는 이 숲에서 꿈속을 들여다보듯 물속을 들여다보고 물속의 내 얼굴에 흙 두 줌을 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