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바나나

그리운 어머니

by 나목


엄마와 바나나


임현숙



마트 안, 눈길 닿는 곳마다
노란 초승달 꾸러미

그러나
내 엄마의 시절엔
장바구니에 담기엔 먼 사치였어

어느 날
욕실 타일 위로
엄마는 낙엽 한 잎으로 누웠지

침묵의 병실에서

요단강가를 헤매던 엄마는
바나나 껍질 같은 마른 입술로
슛슈스 — ㅂ ㄴ ㅏ

바람을 불었어

그 바람 끝에서
잘 익은 바나나 향이 피어나고
코로 미음을 넘기던 몸이
그 향을 원한 건

먼 길 떠날 요기였을까


갈잎 엄마에게도

초록 꿈이 있었겠지
옷 가게 마네킹처럼
나들이도 하고 싶었을 텐데
사철, 꽃이 벙글어진 몸뻬가
가장 화려한 옷이었어

지금은 길에 널린

피아노 흐르던 레스토랑도
닿을 수 없는 꿈이었을 거야


어쩌면 노랑 바나나는

갖지 못한 꿈의
푸릇한 위로였을지도 모르지


오늘, 내 풍성한 장바구니에

잘 익은 초승달을 담을 때면
슛슈스 —

노오란 엄마의 유언이 목구멍에 걸린다.



-림(20130525)



엄마와 바나나


임현숙



마트에 갈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머무는 곳이 있다. 계산대 곁, 과일이 즐비한 구석, 입구 근처. 어김없이 그 자리에 노랗게 익은 바나나 꾸러미가 동그마니 쌓여 있다. 겹겹이 포개진 노란빛이 햇살처럼 번지고, 누운 등선은 어릴 적 크레파스로 그리던 초승달을 닮았다. 반쯤 눈을 감고 웃는 얼굴 같기도 하고, 잠든 아기 볼처럼 다정히 휘어 있다.

사람들은 주저 없이 바나나를 집어 든다. 아이들은 매대 옆에서 껍질을 벗겨 금세 입에 넣는다. 손에 닿는 것도, 입에 닿는 것도 쉬운 일. 바나나는 더 이상 특별한 과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깝고 익숙한, 일상에 스며든 단맛이다.

하지만 내 엄마의 시절엔 달랐다. 그 노란 초승달 하나는 손이 닿지 않는 하늘의 달처럼, 장바구니에 담기 어려운 사치였다. 수입 과일이었기에 백화점에나 가야 살 수 있었다. 엄마는 이따금 말씀하셨다.


“옛날엔 바나나가 금덩이였지.”


감기에 걸렸을 때, 병문안을 갈 때처럼 특별한 일이 있어야 만져볼 수 있던 과일. 동네 아이들 몇이 바나나 하나를 쪼개 나눠 먹고, 그것마저도 아까워 씹지도 못하던 시절. 지금은 사시사철 널린 바나나 하나가, 그때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붙잡던 꿈이었다. 너무나 멀었던 초승달을, 우리는 꾸러미로 사서 먹다 물러서 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어쩌면 세대와 세대 사이의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물을 앞에 두고도 기억의 밀도는 저마다 다르다.

엄마가 욕실에서 쓰러지신 건 손자의 첫돌 무렵이었다. 내 아이가 겨우 한 발짝을 떼던 날, 엄마는 젖은 욕실 타일 위에 마른 나뭇잎처럼 떨어져 누우셨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명치께 젖은 수건처럼 묵직하게 들러붙는다. 병원으로 실려 간 엄마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말도, 눈빛도 모두 멈춘 채 미음조차 넘길 수 없는 상태로 영양은 코에 꽂힌 관으로만 공급되었고, 숨소리는 날로 옅어졌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생의 기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 가득 익숙한 향이 감돌았다. 소독약 냄새 사이로 은근히 스며든 단내. 잘 익은 바나나에서 나는 향이었다. 병실에 다른 환자 보호자가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입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싹였다. 들리지 않는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엄마는 바나나를 말하고 계셨다. 말보다 코가 먼저 기억한 단 하나의 맛. 의식조차 흐릿한 순간, 엄마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멀리서 눈요기만 하던 바나나였다.

나는 바나나를 사 오지 못했다. 그걸 보여드리면, 그 작은 소망마저 꺼져버릴까 두려웠다. 삼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입맛을 확인시켜 드리는 일조차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바나나를 사 올 걸. 껍질이라도 벗겨 보여드릴걸. 그 생각은 지금도 나를 붙잡는다.

생전의 엄마는 장바구니 앞에서 늘 멈칫하셨다.


“이건 비싸니까 담지 말자.”


콩나물 100원어치도 값을 깎아야 했던 시절, 그 말은 소비의 원칙이자, 삶의 자세였다. 그런 엄마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바나나를 떠올렸다는 건, 어쩌면 삶의 끝자락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위로를 바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나나는 과일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온전히 누려보지 못한, 엄마만의 ‘몫’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청년이 되었고, 나도 엄마가 쓰러지던 나이 언저리에 서 있다. 식탁 위 바나나 하나를 집어 들 때마다, 그 껍질 속에 엄마가 눕는다. 실눈 사이로 나를 보던 눈빛, 마른 껍질 같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던 바람 소리.


“슛슈스 ㅂ ㄴ ㅏ…”


그 미완의 초승달 빛, 식탁 위에 오래 머물고, 내 목구멍으로 매콤한 향기가 지나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CUR_F18Z2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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