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갈망

봄을 기다리며

by 나목

연작시/갈망-임현숙


갈망 1-기도



순항하던 돛단배가 좌초해

깊이를 모르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립니다


파고가 높을 때면

가랑잎처럼 흔들리며

풍랑이 데려가는 데로

흘러갑니다


여력을 다해 발버둥 치지만

뭍은 보이질 않고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삶의 선장이여

상어 밥이 되기 전에

구명줄을 내려주십시오.


-림(20121206)



갈망 2-절망



말하지 않아도

내 모든 걸 아시는 임이여


이 아침

향기로운 커피가

목에 걸리는 이유

이미 아실 테지요


견뎌낼 만큼만 시련을 주십시오

나는 사기그릇처럼 유약합니다


벌써

이 빠지고 금이 가

담긴 은혜 줄줄 새어나가고


불평의 거미가

날 먹으려 그물을 놓았나이다


슬프고

두려우니

이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나의 임이여

부서지기 전에

돌아보소서.


-림(20130314)



갈망 3-회귀


섣달그믐

돌아온 탕아처럼 예배실로 들어갔다

복음송도 새롭고

찬송가 가락도 변하고

따라 부르는 음성엔 뜨거움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에 너무 멀어진

생명 시냇가


얼어붙은 심장이

가벼운 입술로

송구영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눈이 하얗게 길을 덮고 있었다


새해라는 백지 위에

회개의 첫 발자국

선명하게 찍으라는 듯


따라오며

주홍빛 그림자를 자꾸 지우고 있었다.


-림(20151231)



갈망 4-해빙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시내에

푸릇푸릇
봄빛이 내린다


보이지 않는 물길이
가냘픈 숨을 내뱉는다


이 빠진 사기그릇에도

냉이꽃 수북이


내 안의 봄이 눈을 떴다


불평의 거미줄 사이로

아침이 들어온다.


-림(20200303)



갈망 5-봄 오다



겨울 동안

날개를 다친 새 한 마리가
갈비뼈 사이에 깃들고 있었다


찢어진 깃발 같은 깃털에
투명한 문장들이 돋아났다


긴 겨울의 침묵을 버티며
문장들은 깃털 끝에
꽃눈을 틔우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꽃눈에 혼을 불어넣었다


내 안의 봄은
나를 나로 일어서게 하는 시 詩


가 와서
갈비뼈 속 새에게
처음의 하늘을 돌려주었다


기다리던 봄은
내 안에서 피어난 한 줄의 문장이었다.


-림(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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