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상황극을 미끼로 성폭행을 유도한 사건이다. 여기서 재판부는 랜덤 채팅에 걸려든 '강간범 역할'을 한 남자 오씨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이 말에 무죄를 선고했다면 정말 큰일이다. 정말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니.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정말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
재판부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라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자체가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를 정말 모르는 것일까. 2020년인 지금도 사법부는 아직도19세기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 판결은 애초에비상식적이고 철저히 남성 편중의 관점으로 일관된다. 심장 뛰듯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이. 즉 전제부터 틀렸다는 얘기다.
'여성이 성폭력 당하고 싶은 판타지가 있다'는전제는 사실도 아니고 일반적이지도 않다.
강간 상황극은 남자들의 정치적 포르노다. 이 포르노에 물든 많은 남자들은 성폭력과 박력 있는 섹스를 구분하지 못한다.
여자에게 섹스는 행위보다 유대와 감각이 우선이다. 강간은 상대를 알던 모르던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위협을 느낀 상태에서는 절대 성적 흥분이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가. 또 그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한 재판부는 또 얼마나 무지한가.
질문이 있다.
- 남자에게 가장 섹시한 성관계는 성폭력인가?
-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성적 판타지를 가진 여자가 정말 있을까?
- 반대로 보통의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에게 성폭력 당하는 상상을 하면 짜릿한가?
- 만약 상상을 하더라도 실제 실행했을 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를까?
간단한 문제에 어째서 엉뚱한 결과가 나왔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사건은 심각한 성 왜곡 인식을 가진 '남자들'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자 범행이었다. 또 강간을 교사한 범죄자가 남자였기에 남자를 범행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 범죄 행위를 냉큼 받아들일 모자란 남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설령 여자가 그런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남자라면 혹하기보다 그 여자를 위험한 존재로 느꼈어야 맞다.
범인은 비정상적인 잠재적 범죄자를 부추겼을 뿐이다.
나는 이 사실이 끔찍하다.
만약, A가 B인척 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자살 상황극을 해달라"라고 말했다 치자. C는 그것을 정말 그렇게 믿고 B를 죽였다면? C는 정말 그렇기 믿었기 때문에 무죄가 될 수 있을까? 재판부의 말대로 '모든 증거를 종합해 봤을 때 자신의 행위가 살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거나, 알고도 용인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할 수 있을까?
핵심은 '정말 그렇게 믿었다'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에 있다. 행위 자체가 실현이 되었을 때 범죄라는 것이다. 강간은 범죄다. 백 보 양보해서 그것이 역할극이었다 믿었더라도 무턱대고 들어가서 할 짓은 아니었다. 여자가 저항했을 때 필사적이었다면 한 번쯤은 되물었어야 했다.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만약 '정말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무죄가 된다면 앞으로 국민들은 큰 두려움에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 잠재적 범죄자는 그런 생각 자체가 범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자신의 비뚤어진 욕구를 풀기 위해 모르는 척 가담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황'이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다. 지능과도 상관이 없다. 인간에게는 감(感)이라는 게 있다. 고차원적으로는 양심이 있다.
여자의 행동이 강간 상황극을 요청한 사람 같지 않았음을 인간이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추측건대 강간범 역할의 남자는 분명 한 순간이나마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욕구가 있었기에 강행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속여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슬그머니 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