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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play May 19. 2020

나는 내 것인가



 ...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몸이 나다. 타인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면 그냥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행동이 그 자신이다. ...
인간은 타인과 사물은 물론 자신도 소유할 수 없다. 가장 간단한 증거는 누구나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무엇을 소유할 수도 없고 누구로부터 버려질 수도 없다. 인간은 행동일 뿐 대상도 주체도 아니다. 그렇다면 버림받았다고, 모욕당했다고, 빼앗겼다고 분노할 이유도 줄어든다.
'참나'는 행동 뿐이다. ... 행동만이 나를 말해주고 행동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 <정희진처럼 읽기> 中 -





" 행동이 곧 나다.

행동은 정신이며 무의식이다. "



말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라고 착각하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늘 다짐한다. 타인에게도 적용하곤 한다.

말은 꾸미고 돌리고 숨길 수 있다. 때문에 행동과 생각에는 큰 괴리가 있다. 우리는 그 괴리감을 매번 경험한다. 그러니 명백히 드러나는 행동(실천)만이 나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몸은 내가 아니다.

특히 마음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다. 몸이 곧 나라고  믿기에 온갖  괴롭다. 몸에 담긴 경험들정신과 생각을 왜곡시킨다. 명상은 그 기억을 정화하는 일이다. 얼룩을 닦고 닦아 투명함을 찾는다. 그래야 기억도, 세상 있는 그대로 분명하고 멀리 꿰뚫어 볼 수 있다. 이것이 자기 자신 피는 토대이며 기본이다.


그러나 몸이 내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감각을 통해 계속해서 몸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폭력에서는 더욱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몸이 다쳐서가 아니라 존재의 존엄성을 훼손당했다는 모욕감이 분노케 한다.


더 나아가 버림받거나 모욕당한 것까지는 어떻게든 감당해볼 만하라도 몸을 빼앗긴다는  다를 것이다.  몸에 대한 소유의식의 알맹이다.


과연 몸을 빼앗겨도 담담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 몸에 대한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진짜 알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몸을 함부로 하거나 방치해도 되는 걸까? 몸은 내가 한 평생 살아가기 위해 빌린 것이다. 몸은 행위를 위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몸과 마음은 밀접히 연결돼 있다. 보호하고 관리하고 사랑해야 한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몸 사용자의 자유이다.)


만약 몸에 대한 소유 극복하면,

즉 몸을 빼앗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를 침해당했다는 생각'은 어떻게 분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빅터 프랭클(<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의 말처럼 가치 즉 내 정신은, 내가 허용하지 않으면 누구도 침해하거나 앗아갈 수 없다. 머릿속 정신은 내가 굴복하지 않는 한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전에 육체, 몸에 대한 문제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수순이 있다. 왜냐하면 정신보다 몸의 고통이 더 선명하고 더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독립투사들의 항거는 인간 초월이다. 몸의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고, 수모일 수 있는 침해에 세뇌당하지 않았다. 정신과 혼을 자기 존재로 인식 몸이 아닌 행동으로 말했다.


누군가에게 육체를 침해 또는 착취당한 이들에게 필요한 생각(정신)은 무엇일까?

당했으나 애초에 당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어떻게 지극히 알도록 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그들은 사람들의 연민을 원하면서도 사실 원하지 않다. 결국 자기 연민부터 끊어내야 한다.

2차적 가해가 될 수 있는 연민과 걱정의 시선은 찰나여야 한다. 무덤덤하고 평등한 시선으로 고쳐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다시 곧 진리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부정확하고 자기중심적인 몸의 기억은 대부분 왜곡돼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기억을 붙들고 있는 한, 몸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애초에 몸은 유전적 결합 덩어리였다. 이미 내가 나이기 전의 유기체들로 구성된 조합이다. 그 세포들 하나하나를 인지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나의 정신이 창조이다.


 내가 아니다. 행동하는 몸짓이 나다. 행위는 정신이다.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애초에 빼앗길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알면' 된다. 정신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었다 말도 그 자체로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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