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8일 칼럼 기고분)
[사례 1] 코스닥 상장업체 A사 대표 갑은 회사운영이 어려워지자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기로 하고, 주가조작 전문업체 ‘마이더스’에 시세조정을 부탁합니다. 마이더스는 차명증권계좌를 수십개 만들어 500원이던 주식을 1,000원까지 올려놓았고, 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여 100억 원 가량의 증자를 마쳤습니다. 유상증자까지 마쳤지만 갑은 더 이상 회사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회사 돈에 손을 댑니다. 회사통장에 들어있던 50억 원을 수표로 찾아, 이를 현금화시키기 위해 돈세탁 용역자 5명에게 10억 원씩 나눠주면서 이를 현금으로 바꿔오면 수수료 5,000만 원씩 주기로 합니다. 이에 용역인 5명은 1억 원짜리 수표 10장씩 들고 은행들을 돌아다니며 현금화시키고 수수료를 떼고 갑에게 돌려주었으며, 갑은 현금 47억 원 가량을 환치기한 다음 필리핀으로 도주합니다. 이것이 주가조작과 돈세탁으로 얼룩진 코스닥 상장폐지 기업들의 종말시나리오 중 하나입니다.
[사례 2] 필로폰을 생산하는데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마약을 금하고 있으므로, 필로폰을 구하기는 어렵고 가격은 올라갑니다. 주사용 1회분 0.05g이 소매가 10~20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니 불법적인 마약수출입․판매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눈독을 들입니다. 대량수출입업자, 제조업자, 소매업자는 큰 돈을 벌지만, 수익이 노출되기를 꺼리므로 통상 차명계좌를 이용해 관리하게 됩니다. 규모가 큰 돈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은행 비밀금고에 예치해 둡니다. 이와 유사하게 무기류밀거래·인신매매·도박·매춘 등 범죄조직의 수입원 또한 이처럼 돈세탁을 통해 깨끗한 돈처럼 탈바꿈합니다.
[사례 3] B는 미국에서 자원봉사와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입니다. 비영리단체에 乙이 500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기타 각처에서 모금된 성금이 모여 빈민구제 목적하에 C란 단체에 송금됩니다. 하지만,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당국의 조사나 감독이 소홀한 점을 이용하여 무기밀매업자인 乙은 위 단체를 통해 무기거래대금을 치렀고, C단체는 테러집단에서 만든 유령단체로서 테러자금의 조달에 이용되었던 것입니다.
돈세탁(Money Laundering)은 범죄 등을 통해 얻는 수익의 출처 등을 숨기고 일반 시장에 사용해도 신원이 발각되지 않게 하는 행위입니다. 돈세탁은 더러워진 돈(규제를 받는 약물, 도난품을 거래하거나 탈세, 뇌물 수수 등에 의한 수익)을 조사기관의 압류, 적발로부터 피하거나 새로운 범죄의 자원금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방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금융이 복잡하고 신속해짐에 따라 돈세탁의 유형이나 방법은 천태만상입니다. 예전에는 가명이나 차명·도명계좌를 개설하여 거액수표를 작은 단위의 수표로 나누어 몇 개의 가명통장을 오가며 자금추적을 피한 다음 한 계좌에 몰아넣고 이를 출금하는 방법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이후로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가명이나 차용계좌는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돈세탁방법은 더 복잡해졌는데, ① 자기앞 수표를 반복적으로 유통하는 방법, ② 금융기관에서 전표작성없이 다른 당좌수표 등으로 수표를 맞바꾸거나, 수표로 입출금한 것을 마치 현금거래인 것처럼 꾸미는 방법, ③ 세탁된 돈을 국내외 위장기업이나 자회사에 정상적으로 투자된 것으로 위장하거나 환치기로 해외로 송금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통한 불법송금, 돈세탁이 문제되고 있기도 합니다)
돈세탁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전문기관은 ‘금융정보분석원(www.kofiu.go.kr)’이며, 관련법령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 ‘공중협박자금(테러자금 등)조달금지법’,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관한특례법’,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등이 있습니다. 특히, 특정금융거래보고법에서는 ① 의심거래보고제도, ②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1거래일 2천만원 이상의 현금 입출금), ③ 금융기관의 고객확인의무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어 불법자금의 세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용어설명]
의심거래보고제도(Suspicious Transaction Report, STR)란, 금융거래(카지노에서의 칩교환 포함)와 관련하여 수수한 재산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토록 한 제도입니다. 불법재산 또는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의 판단주체는 금융회사 종사자이며, 그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제도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urrency Transaction Reporting System.CTR) 는 일정금액 이상의 현금거래를 FIU에 보고토록 한 제도입니다. 1일 거래일 동안 2천만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한 경우 거래자의 신원과 거래일시, 거래금액 등 객관적 사실을 전산으로 자동 보고토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융기관이 자금세탁의 의심이 있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의심되는 합당한 사유를 적어 보고하는 의심거래보고제도와는 구별됩니다. 우리나라는 2006년에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하였으며(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의2), 도입 당시는 보고 기준금액을 5천 만원으로 하였으나, 2008년부터는 3천 만원, 2010년부터는 2천 만원, 2019년부터 1천 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는 객관적 기준에 의해 일정금액 이상의 현금거래를 보고토록 하여 불법자금의 유출입 또는 자금세탁혐의가 있는 비정상적 금융거래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현금거래를 보고토록 한 것은 1차적으로는 출처를 은닉·위장하려는 대부분의 자금세탁거래가 고액의 현금거래를 수반하기 때문이며, 또한 금융기관 직원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의심거래보고제도만으로는 금융기관의 보고가 없는 경우 불법자금을 적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각국이 사정에 맞게 도입·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확인제도(Customer Due Diligence. CDD)란 금융회사가 고객과 거래시 고객의 성명과 실지명의 이외에 주소, 연락처 등을 추가로 확인하고, 자금세탁행위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실제 당사자 여부 및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는 제도입니다. 금융회사가 고객에 대해 이렇게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것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자금세탁행위 등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이를 ‘합당한 주의’로서 행하여야 하는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