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5일 칼럼 기고분)
야당에서 ‘현 정권 비리 및 불법 비자금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여 청와대와 검찰에 압박을 가하자, 대검 중수부는 일단 현직 대통령 ‘형님 비자금’ 사건을 지휘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전직 대통령 관련 ‘13억 돈상자’ 비자금 재수사도 진행한다 합니다. 한편, 지난 1월 현대그룹 비자금 및 대북송금사건의 핵심인물을 자진 귀국케 하여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고까지 하니, 대검 중수부는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저축은행 건을 비롯한 다양한 비자금 카드로 자리 굳히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정계뿐 아니라 재계도 비자금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효성, 한화, SK, 오리온, C&, 두산, 현대차, 하이마트와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 등이 비자금이나 역외탈세 문제로 재판을 받거나 수사 중에 있습니다. 또한 삼성은 2008년 비자금 특검을 통해 4조 5000억 원 상당 괴자금을 ‘비자금’이 아닌 ‘선친의 유산’으로 인정받게 되자, 최근에는 수천억 대 상속분쟁에 휩싸였습니다(아래 링크 참조).
‘비자금’은 회계처리의 조작 등을 통해 ① 회사 운영상 관례적으로 발생하는 커미션이나 리베이트, 뇌물이나 정치헌금, 임직원의 판공비, 접대비나 로비자금 등 법에서 사용이나 한도를 규제함으로써 공공연하게 지출 처리할 수 없는 돈을 처리하거나, ②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키기 위하여 조성된 돈을 의미합니다. 비자금은 결과적으로 횡령․배임,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죄 뿐아니라 탈세나 외화유출, 정치자금법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과거 정부 주도하의 자원배분, 관치금융 하에서 기업들은 각종 이권과 금융특혜를 얻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고 비자금을 조성했습니다. 생존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지요. 기업은 비자금을 통해 힘 있는 정치권 인사와 결속을 다지고, 비밀스럽게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은닉하였습니다.
비자금 조성은 수익(+)을 축소하고 비용(-)을 늘리는 방법이 가장 기본입니다.
① 매출을 누락하거나 순이익을 조작하는 방법, ② 납품 가격이나 공사금액을 부풀려 계약한 다음 차액을 돌려받는 방법, ③ 유령회사를 만들어 가공의 허위납품계약서를 작성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등 가공 지출을 만드는 방법, ④ 임금, 노무비 및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 ⑤ 해외법인이나 지사에 대한 이전 가격을 조작하거나, 해외에서의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 ⑥ 기업재산의 부정한 평가 특히 채권이나 재고 자산을 과대 또는 과소평가하는 방법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환경이 복잡해지고 거래내용이 다양해짐에 따라 비자금 조성의 방법 또한 다양화․복잡화되고 있습니다. ‘신금융기법’이라는 미명 아래 파생상품, 역외펀드, 계열사나 구매대행업체 등 관계회사와의 거래, M&A나 A&D, 해외 CB(전환사채)․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비자금 조성이 형사사건화 되면, 상당수는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죄(5억 원 이상일 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가 문제 되고 간혹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논의되기도 합니다. 부수적인 문제로는 ①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교부에 따른 조세범처벌법위반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8조 위반(포탈세액 등이 5억 원 이상인 경우)에 따른 사업주 및 관련자의 처벌, ② 매입․매출의 허위 발각에 따른 세무조사와 탈루된 법인세(소득세)․부가세 및 가산세 납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자금 관련 기본적인 쟁점은 횡령․배임인만큼 이에 국한하여 살펴보자면, 조성된 비자금 중 일부를 회사 운영이나 임직원들을 위해 또는 넓은 의미의 회사 이익을 위해 사용하였다면 이를 횡령이나 배임죄가 부정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비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소비하거나, 개인 투자에 활용하거나, 스위스 계좌로 빼돌리거나, 미술품으로 둔갑시켜 관리한다면 횡령죄가 성립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차명뿐 아니라 앞서 본 갖가지 세탁방법을 이용하다 보니 수사기관 입장에선 횡령 입증에 곤란을 겪곤 합니다.
개략적인 판례법리는 이렇습니다.
○ 횡령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권한 없이 그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 같이 처분하는 의사가 인정되어야 하고, 이는 회사의 비자금을 보관하는 자가 비자금을 사용하는 경우라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장부상의 분식만으로는 횡령죄의 ‘은닉’이라 볼 수 없어 비자금 조성 행위 자체는 횡령이 아니다. 다만, 애초부터 개인적 용도로 착복할 의사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횡령에 해당한다(대법원 2010.12. 9. 선고. 2010도11015 판결).
○ 한편 비자금 사용에 관하여는 그 비자금을 사용하게 된 시기, 경위,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비자금 사용의 주된 목적이 피고인의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 내지 불법영득의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9도6634 판결). 따라서, 조성된 비자금을 인출․사용했다면 일응 횡령에 해당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임원 판공비, 퇴직위로금, 경조사비, 명절 거래처 선물 구입비 등에 사용된 경우에는 설사 자신의 위상과 평판을 높이거나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일부 존재한다 하더라도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려워 그 부분에 한해서는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대법원 2009.2.26, 선고 2007도4784 판결, 대법원 1994. 9. 9. 선고 94도998 판결, 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도5459 판결 등 참조).
○ 정치헌금의 경우에는 회사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만 불법영득의사가 부정되어 횡령이나 특별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대법원 1999. 6. 25. 선고 99도1141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