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상구 변호사 Oct 24. 2017

117 사짜와 타짜

(2012년 2월 6일 칼럼기고분)

[표지 출처 :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사법연수원시절 검찰 교수님은, ‘검찰실무상 도박죄에 대해서는 도박의 명칭과 방법을 속어를 포함하여 공소장에 적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대략 어떤 놀이인지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48장의 화투패 또는 조커를 더하여 할 수 있는 놀이로 민화투․ 고스톱․ 도리짓고땡․ 월남뽕․ 아도사끼․ 쪼우기․ 섯다 등이 있고, 52장의 트럼프카드 또는 조커를 더하여 할 수 있는 놀이로는 훌라․ 포커․ 세븐오디․ 바둑이․ 하이로우․ 홀덤 등이 있다고 합니다. 내기골프에도 경기방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되 뽑기, 스크랏치, 대가리 방식으로 상금분배기준을 달리 정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경찰청 지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불법오락실, 사설경마장 단속사건이 넘쳐서 다른 업무는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 정식 온라인 게임사이트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인터넷강국답게 대한민국은 사행성 도박의 왕국이다.’  



우연성


도박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오락이나 스포츠’, ‘도박’ 그리고 ‘사기’의 구별기준이 중요합니다. ‘도박’이라 함은 2인 이상의 자가 상호간에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도(睹)하여 '우연한 승패'에 의하여 그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만, 행위자체가 도박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장소, 판돈의 액수, 도박가담자들의 친소관계, 승자가 도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고려하여 일시오락의 정도에 불과하다면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위로 인정받아 형사처벌하지는 않습니다. 


한편, 도박에서 ‘우연’이란 ‘필연’에 대립된 개념으로, 당사자가 주관적으로라도 결과를 확실히 예견할 수 없거나 결과를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다면 우연성이 인정됩니다. 실제로도 장기나 바둑에서는 접․치수조정을, 골프는 핸디캡부여를 통해 재미나 우연성을 가미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바둑․골프경기와 같이 당사자의 기량이 승패의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더라도 도박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6도736 판결). 



사기도박


하지만, 도박당사자의 일방이 사기적 수단으로 승패의 확률을 지배하는 경우에는 우연성이 결여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더 나아가 사기도박단이 사기도박을 숨기기 위하여 얼마간 정상적인 도박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도박부분은 사기도박의 실행준비행위에 해당될 뿐 별도의 도박죄로 처리할 것은 아닙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9330 판결). 


사기도박의 전형적인 유형으로는 ① 카드나 화투자체에 특수형광처리하고 렌즈를 끼거나 몰래카메라로 상대의 패를 알고 치는 목화투․목카드, ② 패가 이미 결정되도록 만든 ‘탄카드’로 바꿔치기해서 돌리거나, 섞는 척 패를 만든 다음 ‘밑장빼기’로 상대의 패를 결정하는 방법, ③ 기타 피해자에게 향정신성약품을 먹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다음은 사기도박단에 대한 범죄사실의 실례입니다(부산지방법원 2008. 7. 17. 선고 2008고단3098 판결, 다만, 사기도박이기 때문에 사기수법에 중점이 있지, 도박의 종류나 방법은 자세히 적시하지 않습니다). 


피고인들은 평소 도박을 즐겨하고 재력 있는 사람인 속칭 ‘호구’들을 상대로 사기도박을 하여 돈을 나누어 가지기로 마음먹고, 피고인 A와 피고인 C녀(꽃뱀)는 호구를 불러 모으는 ‘모집책’, 피고인 A는 도박을 개장하는 ‘창고장’과 호구가 돈이 떨어지면 돈을 빌려주는 ‘전주(꽁지, 산성)’, 피고인 B, 피고인 C와 피고인 F는 도박에 참가하여 사기도박 기술로 돈을 따는 ‘선수’와 호구들이 사기도박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바람잡이(앞전)’, 피고인 D와 피고인 E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수들에게 호구의 패를 알려주는 ‘기사’ 역할을 하기로 분담하였다. 

피고인들은 2008. 4. 6. 17:00경부터 2008. 4. 7. 02:00경까지 사이에 부산 중구에 있는 피고인 B가 운영하던 X 바에서, 피고인 A는 호구인 피해자 J를, 피고인 C는 호구인 피해자 K를 포커 도박을 하자며 그곳으로 유인하고, 피고인 B와 피고인 C는 피해자들과 포커 도박을 하면서 카드 뒷면에 미리 특수물질로 패를 알 수 있는 표시가 된 속칭 ‘목카드’를 이용하고 각자 귓속에 넣어 둔 극소형 수신기를 통하여 피고인 D와 피고인 E로부터 피해자들의 패를 수신하면서 돈을 걸고, 피고인 D와 피고인 E는 부산 중구 남포동에 있는 Y 모텔에서 모니터로 위 도박장소인 X 바 천정에 미리 설치해 둔 소형 카메라에 찍힌 피해자의 패를 보고 피고인 B와 C에게 알려주었다.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사기도박을 하여 피해자들을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 J로부터 천만 원, 피해자 K로부터 200만원을 취득하였다.(이하 생략)



인생은 한 끗 차이?


인생이나 사회를 도박판에 비유한다면, ‘인생은 한 끗 차이’라고 하던가요. 

성공도 실패도 한 끗, 행복도 불행도 한 끗. 

하지만, 우연성조차 조작되는 세상에서 ‘한 끗발 날리던 타자’는 실상 ‘사짜’이었음을 목격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 한 끗발을 위해 수련도 하고 모험도 걸어보는 소시민들의 대다수는 정작 ‘하수’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잡지 못합니다. 


진정한 고수가 짠하고 나타나 우연성 또는 가능성이란 신성한 법칙마저 더럽히는 사짜의 무리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를 들면 <인간 시장>의 장총찬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116 비자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