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상구 변호사 Nov 13. 2017

207 분묘기지권

(2013년 2월 4일 칼럼 기고분)

명절을 즈음해서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 있는데, 바로 ‘자기 땅에 설치된 타인의 분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매년 벌초하는 걸 봐서는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비석도 없어 누구 묘인지도 모른다’고 하면, 저는 ‘명절 때를 기다려 성묘 오는 자손들 만난 다음 누구 묘인지 알아보고, 일단 잘 협의해 보시라’고 답변합니다.


분묘 철거를 구하려면, 누구의 묘인지 그리고 현재 누가 법적인 분묘 관리권자인지 중요하며, 분묘기지권의 성립 여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데, 이 모든 확인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묘자리권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이란 것인데, 위기(位基) 물권, 묘자리권 등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은 사자(死者)에 대한 경건함과 조상숭배라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윤리관과 미풍양속을 기조로 하여 이어져 내려오던 ‘분묘에 대한 전통적인 관습’을 일제하의 조선고등법원이 판결로써 관습법상의 물권으로 확인한 이래(조선고등법원 1927. 3. 8. 민사부판결) 우리 대법원이 이를 재확인함으로써(대법원 1955. 9. 29. 선고 4288민상210 판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권리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의 시신, 유품 등이 모셔져 있는 묘지를 음택(陰宅), 즉 ‘돌아가신 선조의 영혼이 거처하는 집’이라 여겼고, 특히 유교사상과 결합되면서 선조가 사망한 다음에도 묘지를 잘 모시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묘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 토지주의 승낙을 받아 설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유교사상이 풍수지리설과 결합하면서 묘자리의 선택이 자손들의 번창과 안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 신분의 귀천을 떠나 풍수에 좋다면 내 땅, 남의 땅 안 가리고 묘를 설치하였던 것입니다. 좋은 자리인데 토지주가 팔지 않으면 협박해서라도 강제적으로 입(入葬)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야음을 틈타 타인의 묘역에 암장(暗葬)하거나 타인의 묘를 파내고 은장(隱葬)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땅이 없는 일반 서민들 또한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조상 모실 자리는 필요했기에 토지주의 승낙 여부에 무관하게 묘지를 설치해왔던 것이구요.


반면 토지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승낙이 없이 설치된 묘라고 해서 함부로 파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이는 남의 조상이라도 그 영혼이 잠든 곳이기 때문에 잘못 파냈다가는 자칫 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묘의 처리 원칙으로 생긴 것이 바로 분묘기지권이란 관습법이었던 것이지요.


조선시대에는 산림공유(山林公有)의 이념에 따라 '분묘가 주로 설치되던 산림'에 대하여는 민간이나 개인의 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도 했었으므로, 산지(山地)에 분묘가 설치되면 그 분묘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이른바 '묘지 점권' 또는 '분묘 점권'이라는 사적 점유권의 형태로 보호가 이루어졌는데, 근대적인 의미의 임야소유제도가 형성되면서 타인의 토지 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법률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법부는 분묘기지권을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법에 의한 물권으로 인정해 왔던 것입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사례


그런데, 이제는 전통적인 장례풍습이었던 매장에서 화장, 자연장, 수목장 등 다양화되고 있고, 분묘수호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면서 법제도도 변화하였습니다. 즉,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되면서 무연고 분묘는 물론 연고 묘라 하더라도 2001. 1. 13. 이후 타인의 승낙이 없이 설치된 묘지라면 분묘기지권의 성립을 배제하여 토지주가 직접 관청의 허가를 받아 개장할 수도 있게끔 하였고, 2001. 1. 13. 이후 설치된 묘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15년씩 3회 최장 60년 동안만 매장이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화장하거나 따로 봉안하여야 합니다. 분묘 설치의 범위도 1 기당 대략 10평(30㎡)을 넘지 않도록 하여 분묘기지권의 범위도 조절하고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05. 7. 8. 선고 2004나80900 판결).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유지 사례


그렇다면 결국 현재 분묘기지권으로 문제 되고 있는 분묘는 2001. 1. 13. 이전에 설치되었던 것들이라 보면 되고, 그 분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존의 법리가 적용됩니다.


장사법 시행 이전의 설치 분묘에 대한 판례 법리에 따르면, 다음의 3가지 경우에 성립합니다. ① 토지주의 승낙을 얻긴 하였는데 토지임대차, 사용대차 등 특별한 약정은 없었던 경우(약정이 있으면 그 약정에 따름), ②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이 없이 분묘를 설치하여 20년간 평온ㆍ공연하게 그 분묘의 묘지를 점유한 경우(분묘기지권의 취득이지 소유권 취득은 아님), ③ 자기 땅에 분묘를 설치했다가 분묘에 대한 소유권을 유보한다든지 이장한다든지 하는 특약 없이 토지를 매매 등으로 처분한 경우(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법리를 유추적용)입니다.


최근의 대법원 판례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 또한 같은 입장입니다. 즉 "토지 소유자의 승낙이 없음에도 20년간 평온, 공연한 점유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사실상 영구적이고 무상인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하는 종전의 관습은 적어도 2001. 1. 13. 장사법(법률 제6158호)이 시행될 무렵에는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헌법을 비롯한 전제 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정당성과 합리성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이러한 관습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확신을 가지지 않게 됨에 따라 법적 규범으로서 효력을 상실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하지만 2001. 1. 13. 장사법 시행 전에 이미 설치된 분묘에 대하여 그동안 인정되어 온 관습법에 의한 분묘기지권이나 그 취득시효가 허용될 수 없다고 보기 어렵고, 장사법의 시행만으로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의 변화 또는 소멸을 인정할 만한 전체 법질서의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므로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 등에 관한 기존 법리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려면 일단 봉제사의 대상이 되는 ‘분묘’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내용적으로는 시신이 안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묘(假墓)는 해당되지 않으며, 외형적으로도 묘지라고 인식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장, 암장되어 묘지인 줄 알기 어렵다면 분묘기지권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한 적법하게 성립된 분묘기지권이라 하더라도 이장이나 합장하여 재설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이장이나 합장 당시부터 기존의 분묘기지권은 소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대법원 1958. 6. 12. 선고 4290민상771 판결, 대법원 1994. 4. 12. 선고 92다54944 판결, 대법원 1997. 5. 23. 선고 95다29086 판결, 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다28367 판결, 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다16885 판결 등). 다만 집단 분묘의 경우 그 일부의 분묘를 그 분묘기지의 범위 내에서 이장, 합장하는 것은 가능합니다(대법원 1994. 12. 23. 선고 94다15530 판결).


판례 법리를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인의 토지에 합법적으로 분묘를 설치한 자는 관습상 그 토지 위에 지상권에 유사한 일종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취득하나, 분묘기지권에는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분묘를 설치하거나 원래의 분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게 되면 그 효력을 상실하고, 부부 중 일방이 먼저 사망하여 이미 그 분묘가 설치되고 그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그 후에 사망한 다른 일방을 단분 형태로 합장하여 분묘를 설치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다16885 판결 등 참조). 다만 동일 종손이 소유ㆍ관리하는 여러 기의 분묘가 집단설치된 경우 그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지역은 그 종손이 그 일단의 전분묘를 보전수호하여 묘참배에 소요되는 범위를 참작하여 포괄적으로 정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의 분묘기지권은 그 집단된 전분묘의 보전수호를 위한 것이므로, 그 분묘기지권에 기하여 보전되어 오던 분묘들 가운데 일부가 그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이장되었다면, 그 이장된 분묘를 위하여서도 그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다만 그 이장으로 인하여 더 이상 분묘수호와 봉제사에 필요 없게 된 부분이 생겨났다면 그 부분에 대한 만큼은 분묘기지권이 소멸됩니다(대법원 1994. 12. 23. 선고 94다15530 판결).


이렇게 성립된 분묘기지권은 분묘의 수호와 봉제사를 계속하고 있는 한 존속하게 되므로, 토지소유자에게 오래전 설치되었던 타인의 분묘처리는 아직까지도 난제인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