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6일 칼럼 기고분)
[표지 : 중국 신화통신 <티베트 결혼식>]
‘계절의 여왕’ 5월이면 떠오르는 ‘5월의 장미’.
그래서 5월에는 ‘5월의 장미’가 되길 바라는 예비신부들이 많은 까닭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연인들이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다가오는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라 하더군요.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에는 사랑하는 남녀가 법률적으로 하나가 되는 ‘혼인제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찌 보면 혼인은 개인적인 일인데,
이를 굳이 법적 제도로까지 규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혼인을 통해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족'이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와 국가'가 형성되기 때문에, 혼인이란 사회제도 중 최소한의 것들을 법률로 규율하게 된 것입니다.
즉 아담과 이브가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되고 이윽고 부부로서의 연을 맺어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낙원이 아니라 속세입니다. 따라서 세속의 '아담과 이브' 들에게는 단순한 도덕적 서약을 넘어 각자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신의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반영한 신분상의 관계를 규율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가문과 가문. 개인과 개인의 결합으로 인한 재산상의 관계를 정할 필요가 있었으며, 나아가 그들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거나 그들이 제3자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법률행위가 파생되기 마련이므로 그 기초되는 사항을 법제도적으로 규율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혼인신고를 한 경우에만 부부관계가 창설되게끔 제도화시켰으므로(법률혼 주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혼’이란 것과 법률적인 의미의 ‘혼인’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두 단어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결혼식이란 사실에 중심을 둔 개념인 반면, ‘혼인’은 법률적인 개념이라 보더라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외국에서는 결혼식과 신고를 동시에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도 법률적으로 적법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사실혼 관계’에 불과한 것인 반면에,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하더라도 적법하게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는 '법률혼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부부관계가 성립하려면 실질적 요건과 형식적 요건을 모두 만족하여야 합니다.
먼저 실질적 요건으로는, 양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판단에 의해 의사의 합치를 이루었을 것, 혼인적령기(만 18세)에 이르렀을 것, 근친 간이 아니거나 아니었을 것(8촌 이내의 혈족, 혈족의 배우자 등을 지칭하므로 시아버지와 며느리, 형부와 처제 관계였던 사이도 포함됩니다), 중혼이 아닐 것 등을 모두 만족하여야 합니다(민법 제807조~제810조).
또한 실질적 요건이 모두 만족된 후에 형식적 요건인 ‘혼인신고’를 완료하여야만 법률혼으로 인정되어 법률상 효력이 발생하며 이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민법 제812조).
혼인으로 인해 어떠한 법적 효과가 있게 될까요?
결혼 전 법적으로 두 남녀가 각자의 부모님의 자녀로 속해 있다가, 혼인신고를 통하여 결혼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부라는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면 그 부부의 친족 관계상의 촌수는 무촌(無寸)이 됩니다. 배우자를 ‘또 다른 나’라고 칭하는 것처럼 부부관계에서는 다른 법률관계와 다른 차원의 권리·의무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배우자 간의 의무로는 동거할 의무, 생계에 협조할 의무, 서로를 부양할 의무, 정조를 지킬 의무 등이 있습니다(민법 제826조). 그리고 재산적 효력으로 생활비 공동 부담 의무, 부부 재산 계약의 이행과 부부 별산제의 적용, 상속권 등이 발생합니다(민법 제829조~제833조, 제1003조 등).
민법 제830조(특유재산과 귀속불명재산)는 "①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 ② 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한다."라고 하고, 제831조(특유재산의 관리 등)는 "부부는 그 특유재산을 각자 관리, 사용, 수익 한다."라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부부의 재산은 별개로 하고(별산제), 불분명 재산의 경우 공유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부간의 독특한 권리·의무로서는 ‘일상가사 대리권 및 일상가사 채무 연대책임’이 있습니다(민법 제827조, 제832조). 부부 및 가족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일상적인 일들은 부부가 서로를 대리하여 계약할 수도 있고, 또한 연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합니다. 여기서 ‘일상가사’란 가정생활에서 필수적인 의식주, 교육비·의료비나 자녀 양육비 등으로 국한됩니다. 따라서 생활비를 넘어선 금전 차용이나 가옥 임대, 어음 배서 행위, 근저당 설정, 중요한 재산의 처분, 채무보증 행위 등은 ‘일상가사’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배우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한 ‘부부계약 취소권’이란 것도 있습니다(기존의 민법 제828조). 부부끼리는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 다 사주고 싶고 주고 또 줘도 아깝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내가 오늘 부부의 날을 맞이해 예쁜 장미 한 트럭 사들고 들어갈게’라고 장미 한 트럭분에 대한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고, 이에 아내가 ‘꼭 사 와야 돼’하고 수증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가정할 때, 설령 남편이 장미 한 송이만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다 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러한 것까지 법이 규율하기는 곤란하겠지요. 따라서 민법에서는 부부계약취소권을 규정했던 것입니다. 즉,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미안하지만 오늘 장미 한 트럭분 중 한 송이를 제외한 나머지 증여계약은 이를 취소해야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장미 한 송이도 사지 않고 들어간다든지, 시도 때도 없이 취소권을 남발해서는 안 되겠지요?
[코멘트(법률 개정 사항)] 법원은 민법 제828조에 따른 부부간 계약 취소권이 인정되는 경우는 '원만한 혼인관계가 존속 중일 때'로 제한되고, 사이가 좋지 않을 때에 맺은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었는데(대법원 1993. 11. 26. 선고 93다40072 판결 등), 2012. 2. 10. 민법 개정 시 해당 조문은 삭제되었습니다. 그 삭제 이유인즉 그간 위 조문의 적용사례도 많지 않아 별다른 실효성도 없었고, 법원이 요구하는 원만한 혼인관계의 존속이란 요건 또한 애매모호하므로, 일반 계약법상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여 당사자간의 사적 자치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법제도에 따르면 배우자 중 일방이 상대방에게 사탕발림처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위 사례에서 남편은 '장미 한 트럭분 중 한 송이를 제외한 나머지 증여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고, 아내와 잘 타협하여 합의해제. 합의해지함으로써 그 계약상 의무를 면제받은 경우에만 채무불이행 책임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만한 혼인관계가 존속 중이라면 아내는 남편의 계약 일부 파기 요청을 귀엽게 봐주겠지요? "앞으로 당신이 나한테 하는 거 봐서, 면제 해 주든지 할게."라는 식으로 조건부로 처리될 수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