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0일 칼럼 기고분)
민사법은 크게 재산법과 신분법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혼인이나 입양과 같은 신분행위 또한 기본적으로는 재산상의 계약법리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업계약이 있었는데 일정한 법정사유가 있거나 당사자 사이에 합의될 경우 그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것처럼, 혼인이나 입양의 법률관계가 발생한 다음에도 ‘재판상’ 이혼․파양(법정해지) 또는 ‘협의’ 이혼․파양(합의해지)의 방식으로 신분상 법률관계에서 탈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재산법과 신분법을 막론하고, 계약법의 기본원칙은 ‘당사자간 적법유효한 의사합치’입니다.
민법은 총칙편에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103조), 불공정한 법률행위(104조) 및 통정한 의사표시(108조), 본인의 추인이 없는 무권대리(130조)를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법률행위 중요부분의 착오나 사기․강박이 있는 의사표시 등에 대해서는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5조, 10조, 109조, 110조).
이러한 원칙은 신분행위에 관해서도 약간의 변형을 거쳐 그대로 이어집니다. 혼인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에는 무효이며(815조 1호),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근친혼에 해당될 경우에도 무효입니다(815조 2~4호). 또한 민법총칙상 취소요건에 대응하여 혼인적령인 만 18세 미만의 혼인이거나, 만 18세 이상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요건을 흠결한 경우(816조 1호), 혼인당시 당사자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816조 2호), 사기․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816조 3호) 등의 경우에는 혼인의 취소가 가능합니다.
‘구두계약도 효력있다’는 말이 있듯이 민사법은 원칙적으로 요식행위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부동산물권변동은 거래안전을 위하여 정책적으로 등기제도를 통한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으며(186조), 혼인․이혼 등 일정 신분행위의 경우에도 소정의 신고를 성립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812조, 836조).
한국과 일본 법제가 신고주의를 취함으로써 ‘신고된 혼인관계’와 ‘실제 혼인관계’가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한․일 법학계에선 ‘가장혼인․가장이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위 주제는 실무적으로 사업부도시 채무면탈, 해외이주 또는 외국인의 편법취업입국(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사안에서 형사처벌여부와 함께 문제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외국인이 국내에서 추방된 다음 본국에서 문서위조들을 통해 신분세탁하여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 재입국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혼인이나 이혼은 앞서 본 ‘① 혼인․이혼에 대한 의사합치 + ② 신고’로 이루어지는데, 학계에선 의사합치를 중시하는 ‘실질적 의사설’, 신고를 중시하는 ‘형식적 의사설’로 대별됩니다.
‘혼인할 의사’라 함은 부부관계를 이룰 정신적․육체적 결합에 대한 의사의 합치를 말합니다. 부부관계는 부양․협조․동거․정조의무, 일상가사대리 및 연대책임 등 특수한 법률관계를 맺고, 국적법상 간이귀화의 전제가 되기도 하므로 다른 재산법상의 계약에 비하여 그 효과가 광범위하고 포괄적입니다. 따라서 혼인의 성립에 있어서는 재산법에서 논의되는 ‘의사의 합치’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기에, 다수설과 판례는 기본적으로 ‘실질적 의사설’에 따라 가장행위의 효력을 무효화시키고 있습니다(대법원 1996. 11. 22. 선고 96도2049 판결 등).
다만, 소위 가장이혼에 대해서 판례는 ‘협의이혼에 다른 목적이 있더라도 일시적으로 나마 법률상 적법한 이혼을 할 의사가 있었다면 유효하다(대법원 1993. 6. 11. 선고 93므171 판결, 대법원 1997. 1. 24. 선고 95도448 판결 등)’라고 하여 ‘형식적 의사설’에 따른 것으로 평가됩니다.
즉, 판례에 따르면 혼인은 ‘실제의사’에, 이혼은 ‘신고’에 중점을 두어
가장행위 여부를 판별한다는 것입니다.
가장혼인과 가장이혼에 대한 법원의 상이한 접근법에 관하여 학계의 해석이 난무하나,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① 첫째, 이혼은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혼인이 해소되는 것이고, 특수한 법률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사를 비교적 완화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② 둘째, 혼인신고시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은 형식적으로만 혼인의사를 확인할 뿐인데 반하여, 협의이혼시에는 판사가 직접 이혼의사확인을 하고 그 확인이 있더라도 3개월내 신고하지 않는 한 이혼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신고의 의미가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③ 셋째, 대법원은 ‘혼인에 관한 현실과 신고의 불일치 상태’에 관하여 ‘사실혼’이란 법리도 적용하고 있는데, 일단 유효하게 성립했던 혼인관계가 소위 가장이혼으로 종료되더라도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지속된다면 사실혼으로 법의 사각지대를 일부나마 보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