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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Jun 10. 2022

210  엄마 사랑해, 엄마가 아직은 남자라도...

(2012년 5월 7일 칼럼기고분)


저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에요.

아빠, 엄마는 저를 낳은 다음 이혼했어요.

지금은 아빠하고 살고 있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는 어릴 적부터 치마를 좋아했는데 어쩌다 엄마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데요.


아빠는 엄마랑 이혼하고 나서 수술받아 여자랑 거의 비슷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빠 손잡고 밖에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엄마로 알고 있어요.

저도 가끔은 헷갈려서 실수로 엄마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아빠도 엄마라고 부르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빠가 그러는데 대법원 판사님들이 그랬데요.

저 클 때까지는 일단 남자로 있으라고요.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빠도 여자, 엄마도 여자이면

제가 상처받는다구요.

다른 사람들도 엄마라고 알고 있으니

그냥 여자로 인정해줬으면 좋겠는데...


판사님들이 인정하지 않았어서도

이번 어버이날부터는 아빠를 엄마로 부르려구요.

“엄-마. 사랑해.. 엄마가 아직은 남자라도...”





트렌스젠더(transgender, 성전환자)들은 그 나름대로 사랑도 하고 때로는 가정도 꾸리길 원하지만,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일부 연예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트렌스젠더는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 사회구성원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성적 소수자인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도 나름대로 너그러워지고 있습니다.


주요 쟁점은 ①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과 ② 어떤 조건하에서 성별을 정정해 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고유의 성’이냐 ‘전환된 성’이냐 - 사회통념설


‘성의 전환’ 문제는 이미 타고난 남성 또는 여성을 전제로 다른 성으로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행 법령에서는 ‘성’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성’의 개념에 대해서 해석론에 맡길 수 밖에 없었는데, 사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태생적 성별 이외에도 정신적·사회적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사회통념설’을 명시적으로 취하였습니다.


따라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된 사람이라도 구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될 수 있으며, 이는 성전환자가 법원으로부터 성별정정에 대한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3580 판결).


상대방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쾌감이나 혐오감어린 시선으로만 볼 것은 아닙니다.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들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합니다(헌법 제10조, 제34조 제1항, 제37조 제2항).


구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라고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성전환자에 대한 성폭행범에 대해 강간죄를 적용하지 않고, 범행대상이 부녀로 한정되어 있지 않은 ‘강제추행죄’로 의율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 판례(2009도3580)에서는 성전환자가 여성으로서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오랜 기간 여자로 살아왔다면, 비록 호적상으로나 법률상으로는 남성이더라도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하므로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시를 했습니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3580 판결). 다만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2012. 12. 18.자 개정형법, 2013. 6. 19. 시행).  




가족관계등록부상 ‘전환된 성으로의 성별정정’


1) 성별정정허가의 기본 요건


물론 사법부가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전환된 성을 법률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① 의학적으로 성전환증(성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고 상당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 치료 등을 받고도 위 증세가 치유되지 않고,

② 반대의 성에 대한 정신적·사회적 적응이 이루어졌고,

③ 일반적 의학적 기준에 의하여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적 성징이 변경되었으며,

④ 전환된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공고한 성정체성의 인식 아래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의 외관을 하고 성관계 등 개인적 영역 및 직업 등 사회적 영역에서 모두 전환된 성 역할을 수행하고,

⑤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 성으로 인식되는 정도에 이르러 사회통념으로 볼 때 전환된 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되고,

⑥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등 사회규범적으로도 허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전환된 성을 법률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구 호적법 제120조의 문언해석상 ‘기재에 법률상 허용될 수 없거나 착오, 누락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던 정정신청을 헌법합치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도 적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대법원 2006. 6. 22.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現 가족관계등록법 제104조).


제104조 (위법한 가족관계 등록기록의 정정) 등록부의 기록이 법률상 허가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나 누락이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이해관계인은 사건 본인의 등록기준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등록부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


2) 외부성기 성형 요건 - 불요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성전환자 성별정정허가신청 관련 사무처리지침(대법원예규)’상으로는 반대성으로의 성별정정에는 “외부성기”를 포함한 성전환수술 등이 전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까다로운 요건은 실제로 성별정정을 원하는 성전환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기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대법원 예규에 대한 일부 개정을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된 내용이 바로 외부성기성형이었는데, 이 부분에 관한 예규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13. 3. 서울서부지방법원을 필두로 하여 최근의 하급심판례에서는 외부성기성형을 필수적 요건으로 판단하지 않고 성별정정을 허가해주고 있습니다.


즉,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은 성전환증 환자인 여성을 남성으로 성별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외부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하는 성전환 시술이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법률적으로 여성 성전환자의 성을 판단함에 있어, 장기간이 소요되고 위험성도 있으며 비용도 많이 드는 남성 외부성기의 성전환시술까지 요구하는 것은 성전환자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적어도 여성을 남성으로 성별정정을 함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요건으로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예규에서 문제가 된 조항은 최종적인 외과수술(성기수술)을 했을 것, 만 20세 이상일 것, 혼인한 사실이 없을 것, 자녀가 없을 것, 반대 성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을 것, 병역의무를 이행하였거나 면제받았을 것, 범죄 또는 탈법행위의 의도나 목적이 없을 것, 신분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인정될 것, 부모의 동의서를 제출할 것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2009. 1. 위 지침을 법원이 의무적으로 성별정정 신청인의 병적조회, 전과조회, 신용정보조회, 출입국사실조회를 실시하도록 한 규정을 ‘필요한 경우’에 사실 조회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고(제4조), 허용기준 중 ‘성전환수술 이후 반대 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것에 대한 기준’과 ‘병역의무 이행 및 면제에 관한 기준’, ‘신청인의 성별정정이 신청인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인정될 것’ 등을 삭제하였습니다(제6조). 또한 가족관계등록부에 ‘성별을 정정(전환)’이라고 표시하던 방식을 개정하여 ‘성별을 정정’이라고만 표시하도록 하였습니다(제9조). 또한 대법원은 2013. 6. 성년에 관한 개정민법을 반영하여 만 19세 이상으로 변경하였습니다.



3) 혼인 및 자녀 여부 요건 - 소극요건으로 인정


한편, ‘성전환자 성별정정허가신청 관련 사무처리지침’ 중에는 허가요건으로서의 혼인한 사실이 없을 것, 자녀가 없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쟁점에 관해 최근 2011. 9. 2.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① 과거의 혼인경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더라도, 현재 혼인 중에 있는데 성을 변경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동성혼(同性婚)이 되는 것과 같아서 성별정정을 해 줄 수 없으며, ② 미성년의 자녀가 있다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임에도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자의 복리를 고려하여 허가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대법원 2011. 9. 2.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


하지만 이에 대한 학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즉 미성년의 자녀가 있더라도 자녀가 원하면 성별정정허가를 내주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지요.


#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박정화)은 2022. 11. 24.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혼인 중에 있지 아니한 성전환자에 대해서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종래 판례를 변경하고,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에는 성전환자의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와 달리 성전환자인 신청인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성별정정허가 신청을 불허하는 취지로 판단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 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11. 24. 선고 2020스616 전원합의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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