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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18. 2017

012 ‘열린 사회’를 향해서

(2011년 10월 3일 칼럼 기고분)


1938년, ‘칼 포퍼’는 히틀러가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전체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를 저술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란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국가주의’, ‘전제주의’, ‘민족주의’등 폐쇄적인 이념은 ‘플라톤 - 헤겔 - 마르크스’등을 통해 전수되었는데, 이들의 사상은 '열린 사회‘의 적이자 세계대전을 일으킨 자들의 정신적 토양이 되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평등의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마르크스뿐 아니라, 대철학자 플라톤과 헤겔까지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했으니 당시로서는 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이래, 한때는 정당 명칭에 ‘열린’이란 단어가 들어갈 정도로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주는 호소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서로 자기네 편이 ‘열린 사회’이고 상대방은 ‘적’이라고 다투는 해프닝도 있어 왔습니다. 




도가니


2011년 ‘도가니’란 영화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장애학생 성폭행’이란 너무 무거운 주제를 선택한 이 영화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 영화가 르포 형식의 TV 프로그램(예컨대 추적 60분, PD수첩)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법조계에서 수시로 접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은 ‘도가니’의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그리고 정치계까지 재빨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생각해 보니, 위 영화의 주제가 단순히 ‘성폭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의에 목마른 국민들이 ‘폐쇄사회와 그를 옹호하는 권력’에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는 공적분야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가 모든 공적 영역을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에 국가는 중요한 최소한의 사회복지제도만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는 사회복지법인에게 공적 영역을 담당해 줄 것을 위임해 왔습니다. 물론 국가는 사회복지법인이나 단체에 보조금 지급이나 세제혜택 등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이익을 부여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사회복지 본연의 목적을 도외시하고 비영리법인을 영리법인처럼 운영한다든지, 실제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편파적인 공익사업을 한다든지 하여 묵묵하게 사회복지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까지 욕먹여 왔습니다. 더 나아가 비윤리적인 범행까지 저질렀다면 최악이라 할 수 있겠지요. ‘폐쇄적일 뿐 아니라 비인권적으로 운영된 복지법인’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이에 대한 공분(公憤)이 바로 도가니 열풍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도가니> 스틸 컷



Open!


물론 그 이면에 영향을 미쳐온 다른 사건들도 많았습니다. 2011년 내내 ‘저축은행’ 관련기사가 언론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자들의 불법대출, 분식회계, 해외 비자금 조성 등 비윤리적인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한 회계법인이 아직 퇴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유명 상호저축은행에 대하여 감사의견거절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까지도 전해졌습니다. ‘저축은행 사태’도 결국엔 금융이란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회사가 족벌체제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자의적으로 운영됨과 동시에, 정관계 권력을 통해 사태를 무마하려 하였던 점에서 국민들의 원성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문제 된 저축은행들은 ‘열린 사회의 적들’이었던 것이지요. 


급기야 최근에는 한국 최대의 교회에서 당회장 가족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정성껏 마련한 신성한 헌금이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 비자금 조성되고 해외 유출되고 개인적인 용도 등에 사용되었다는 취지입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세상 곳곳에 폐쇄적이고 절대적인 권력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던가요. 

대다수 국민들은 손 모아 열린 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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