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9일 칼럼 기고분)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은 “경찰공무원은 교통의 안전과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제1항을 위반하여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운전자’가 술에 취하였는지를 호흡조사로 측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운전자는 경찰공무원의 측정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하여 음주측정을 거부한 자는 음주운전 전과 2범 이상인 사람의 음주운전과 동일하게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란 형사처벌을 받게 되며(법 제148조의2), 그의 자동차 운전면허를 예외 없이 취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법 제93조 제1항 제3호).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되지 않는 3가지 point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경찰관의 음주측정요구를 거부한 경우에 비로소 형사처벌이나 면허취소처분을 하도록 되어 있어 음주측정을 거부하였다고 하여,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고 면허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교통법상의 운전의 개념에 대하여는 엔진 시동설, 장소적 이동설, 발진 조작 완료설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고 이에 대하여 법원은 발진 조작 완료설을 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주취자가 자신의 차량에서 시동도 켜지 않고 잠만 자고 있었거나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히터만 튼 채 동승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과 같이 발진 조작을 완료하지 않은 경우에는 ‘운전’이라 볼 수 없어 무죄판결을 선고되곤 합니다.
과거에는 “운전자로 지목된 자가 실제로 운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찰공무원이 음주측정 요구 당시의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피고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죄가 성립된다”는 하급심 판례가 있었지만, 현재의 판례법리에 따르면 음주운전 자체가 증명되어야만 이를 전제로 음주측정거부죄로 의율 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7. 1. 12. 선고 2006도7074 판결 등). 즉 경찰공무원의 음주측정 요구에 응하여야 할 사람은 당해 자동차의 운전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이 음주상태에서 운전한 사실이 없다면 설령 경찰관이 허위정보에 의하여 그 사람이 주취상태에서 운전하였다고 오인할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경찰관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한 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고, 오히려 목격자들의 증언이나 다른 객관적 정황증거들에 의하여 운전사실을 밝힌 후에야 비로소 음주측정 거부로 처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주측정요구는 교통안전과 위험방지를 위한 음주단속에서 이루어지고 이는 행정경찰작용으로 취급됩니다. 음주단속현장은 음주측정기 등을 갖추고 불특정의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음주측정을 시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음주측정거부죄가 인정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음주단속 이외의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더니 현장에 있던 사고 운전자의 음주운전이 의심되어 음주측정기가 있는 경찰서로 연행하는 경우입니다. 교통사고를 야기한 자가 뺑소니이든 기타 경위로 사고 현장을 벗어나 그 자가 있는 주거지나 직장 등에 찾아갔다가 음주운전이 의심되어 경찰서로 연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통사고 야기자가 음주운전을 했는지 또는 그 현장에서 벗어난 자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행정경찰작용이 아니라 수사작용입니다. 90년대 이전에는 1가구 2~3대씩 차량을 보유했던 것도 아니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그리 심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음주운전 후 현장에서 사라져 운전계속의 의사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음주운전 수사를 위한 음주측정 요구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엔 음주측정을 위하여 운전자의 집이나 직장까지 찾아갈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었지요. 하지만 1995년 법 개정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도 음주측정이 가능하도록 하여 사전에 미리 음주운전의 객관적 증거를 확보한 다음 적법절차를 거쳐 음주측정 요구를 한다면 이때에는 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측정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찰관이 음주운전을 미리 예상치 못하는 등의 이유로 음주측정기 없이 사고운전자를 만나거나 찾아가는 경우도 빈번한데 이때 음주운전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하여 사실상 그 의사에 반하여 경찰서나 지구대로 연행해 갈 수 있는지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음주측정을 위하여 당해 운전자를 강제로 연행하려면 수사상의 강제처분에 관한 형사소송법상의 절차에 따라야 하고,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법한 체포 상태에서 음주측정요구가 이루어진 경우, 음주측정요구를 위한 위법한 체포와 그에 이은 음주측정요구는 주취운전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하여 연속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아 위법한 음주측정요구가 있었던 것이므로 음주운전자가 이를 거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도8404 판결).
○ 경찰청내부규정에 불과한 '교통단속처리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그에 따르지 않더라도 측정요구 자체가 곧바로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지 않으나, 기본적인 내용(제37조, 제38조)은 알고 있어야 할 듯합니다. 2017. 4. 11.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지침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함정단속을 피하여 순찰 중 또는 사전에 지정된 장소에서만 실시함
② 구강내 잔류알콜 소거와 관련하여서는 200㎖ 물 제공 후 바로 측정하도록 함
③ 음주측정 간격을 기존 10분 간격에서 5분 간격으로 줄여 3회 이상 불응하면 의율처리하도록 함
○ 한편 호흡측정기에 숨을 내쉬는 시늉만 하는 등으로 음주측정을 소극적으로 거부한 경우라도 일정 시간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운전자의 측정불응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때에 측정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5. 12. 24. 선고 2013도8481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