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감성 펌핑해주는 리얼리티 쇼
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좋다. 특히나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 그리고 새 시작을 알리는 1월에는 왠지 모를 달콤 쌉싸름한 감정에 휩싸인다. 매년 그러는 것 같다.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어서, 그 겨울 감성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춥고 눈 내리는 계절에 집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남들 연애하는 모습들을 보면 아주 흥미롭다. 약간의 씁쓸함과 공허함이 남기는 하지만. 그럼 내가 꽂혀버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몇 개 적어보도록 하겠다.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아마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는 '출연자'를 보는 맛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얼마나 나오는지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바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셰프, 한의사, 마케터, 사업가 등 다양한 배경,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지는 모습이 흥미로웠던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김도균'이 제일 매력적이었다. 내가 남자임에도 말이다.)
다른 포인트를 얘기하라면 아무래도 '추리'라는 것이다. 예전에 강호동의 천생연분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누가 누구에게 사랑의 짝대기를 보내냐'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기 때문이다. 출연자도 그날의 방영분을 보며 흥미진진해하고, 시청자도 같이 추리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아마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매력적인 게 사실이지만, 다 보고 나면 드는 의문이 있다. "왜 하트 시그널만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유독 화제성이 높은가? 그것도 채널A에서!" 생각해보면 채널A 주 시청층이 이런 연애 리얼리티를 즐겨보는 2030이 아닐 텐데 말이야.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요즈음은 다채널 시대기 때문에, 사실 시청자들은 '어느 채널'에서 하는지보다 '어떤 콘텐츠'인지에 더 주목한다. 다시 말해 '채널A'에서 하기 때문에 안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트 시그널이 충분히 재밌는 콘텐츠이니 젊은 층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을 테고, 그것이 중장년층까지 확장됐을 공산이 크다. 비슷한 '확장'의 사례이지만 '중장년층 -> 젊은 층'으로 반대로 확장된 것이 나는 18년 최고의 화제작 '미스 트롯'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채널적 특성보다는 그저 콘텐츠가 재밌고 완성도가 높기에 흥행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연애 리얼리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를 입문시킨 프로그램이다. 일단 나는 춤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춤과 사랑'이라는 소재가 결합했다는 데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프로그램도 이 춤이라는 요소를 남녀 간의 관계 발전에 아주 중요한 장치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질적이지 않게, 굉장히 잘 녹여냈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결국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사수한 것은 '그들의 춤사위'가 아닌 '그들의 사랑의 짝대기'였다는 점에서 춤은 어디까지나 '사랑'을 위한 매개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도 역시 '출연자'가 메인인 셈이고 캐스팅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역시나 매 시즌마다 응원하는 캐릭터 혹은 커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최애'를 가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시즌 2가 되면서 '단체 MV'라는 것이 구성상 새로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개인 MV도 중요하지만 단체 MV의 경우가 출연자들이 더 자연스럽게 자기 매력을 보여주기 쉽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또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판도를 뒤바꿀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단체 MV이다. 더불어 이 단체 MV직전에 1차 뮤비를 찍는데, 여기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사실상 기회가 없다. 그리고 한정된 기간 안에 서로에 대한 호감을 적극적으로 쌓아나가야 하는 그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데, 지금 저 시점에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은 사실상 초반부는 그냥 버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금 더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는 '단체 MV'는 매우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택받지 못한 남자들을 보면... 꼭 나 같아서 맴찢.. 그래서 이게 꼭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썸바디는 채널 맞춤형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1020이 MNET 주 시청층이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직업이 모두 '댄서'였다는 게 먹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윗 세대들이 별로 흥미로울 만한 소재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스튜디오 촬영이 아예 없다는 점도 어찌 보면, 부수적인 것(스튜디오 토크)보단 핵심적인 것(남녀 댄서들의 합숙 생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사실 이 콘텐츠는 다 보지는 않았지만 위 두 편의 콘텐츠와는 정말 결이 다르기에 한 번 써볼까 한다. 하트 시그널의 원조 해외 포맷이라고 해서 봤는데 사실 아주 유사하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만큼 하트 시그널이 잘 바꾼 것이겠지?) 일단 '남녀들을 한 집에 살게 한다'는 시드 아이디어는 동일하지만 그 외에는 너무나도 다르다. 특히 출연진 나이 갭이 크다는 점이 제일 눈에 띄었고, 데이트할 찬스들 등 제작진의 인위적인 개입이 전혀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날 것의 느낌. 때문에 한국 연애 예능들이 대부분의 분량을 '남녀 간의 데이트'에 할애하는데 반해, 테라스 하우스는 '한 집에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갈등, 이를 테면 청소 당번 정하기'와 같은 문제까지도 중심적으로 다룬다. 30분 남짓의 한 에피소드에 이걸 중심으로 다룰 때도 있으니 단순 '사랑'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확장해서 보여준다는 의미 아닐까. 때문에 한국 예능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소 판타지적인 한국 감성보다 현실적인 외국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테라스 하우스를 추천한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역시 출연진이다. 일단 사람이 적다. 한국 예능이 8~10명인데 반해 여긴 6명이니 관계의 복잡함이 한국 예능만 못하다.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보고 싶다면 한국 예능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 일지 모르지만, 외국인들을 보다 보니 한국 예능보단 살짝 몰입하기 어렵다. 물론 썸바디, 하트 시그널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매우 잘난 분들이라 나와 괴리감이 드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라 더 감정이입이 쉬워 흥미진진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건 나와 다른 인종이라 이입의 정도가 약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몰입감' 면에서는 국내 예능에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패널들의 토크가 웃기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 예능과 차이점이 바로 여기라 생각한다. 수위 높은 드립이 오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한국 방송에서는 어렵겠지?
이 예능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아, 나도 저런 곳에서 한 달만 생활하고 싶다'였다.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공간. 살면서 언제 그런 곳에 가보겠나. 이런 판타지를 자극하는 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기본적이고 아주 원초적인 공략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언젠가 저곳에 출연할 그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