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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r 13. 2020

[책 리뷰] 댓글부대

20.02.24 월

1. 사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보다는 영화, 드라마, 유튜브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내가 아주 흡입력 있게 빨려 들어 읽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였다. 꽤 전의 일이라 비록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만큼 재밌었다는 그 느낌만큼은 선명하다. 아마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 동 작가의 소설을 고른지도 모른다.


2. 장강명 작가라는 이유 외에 이 책을 고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제목 때문이었다. 특히 작년 한 해 인터넷 '악플'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화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악플은 작년 한 해만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3. 책은 댓글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와해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특정 음모 세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이철수와 남산의 노인으로 대변되는 재계의 정치적 암흑 세력이 팀-알렙을 고용하며 인터넷 여론 조작을 하는 과정을 아주 미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 담론을 다룰 것이라는 일전의 예상과 달리, 장강명 작가는 메인 캐릭터들을 설정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소설의 전형을 따랐다. 한국이 싫어서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장강명 작가는 이렇게 한정된 인물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전개를 기반으로, 등장인물 간 인터뷰와 본 사건의 병렬적 구성이 소설의 도드라진 특징이라 하겠다.


4.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바로 네이버나 유튜브의 댓글들을 보고 한 번쯤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훈장질도 좀 가려가며 하세요.'의 다소 공격적인 어투의 댓글부터 '저도 그런 생각했는데 22'처럼 공감을 표하는 댓글까지, 이러한 댓글들이 모두 각 '개인'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닌 특정 정치 세력의 음모에 의한 대량 주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소설 속에 쓰인 에피소드나 대사 등이 실제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여과 없이 사실적이었고 간간히 등장하는 현실 세계의 명칭들(이를 테면 연예인 이름, 특정 사건 등)이 섞어 쓰임으로서 독자는 '와, 진짜 현실적이다'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러 사실적 묘사를 통해 댓글 주작의 공포와 폭력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만큼 이 글 속으로 그들을 빨아들여야 결국 그들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감상을 이어갈 수 있다 생각한 건 아닐까. 덕분에 이제부터 네이버나 유튜브의 댓글들을 모두 있는 대로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듯싶다.


5. 결국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은 굉장히 씁쓸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20대 젊은이들(팀-알렙)이 검은 정치 세력에게 많은 돈을 받아가며 그들을 위해 댓글을 주작하는 모습이, 어그러진 청춘들과 그를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시커먼 권력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그 젊은이 중 한 명이 결국 이용당하고 죽임을 당하니 애처로우면서 비극적이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6. 2015년 출간된 책이지만 이 소설 속 모습들이 5년이 지난 현재, 2020년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회의 근미래를 내다보았다던가, 5년 동안 사회는 어떠한 자정작용도 없이 발전이 없었다던가. 특히 유튜브의 붐으로 인해 가짜 뉴스가 이전보다 더욱 판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여러모로 이 소설은 비정하면서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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