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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r 13. 2020

[책 리뷰] 말이 칼이 될 때

혐오 표현의 위험성에 대해

1. 혐오란 단순히 '싫어함'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혐오는 hate 외에 어떠한 발화로 상대방에게 차별이나 편견 등의 해악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의 총체였다.


2. 최근 네이버 연예판의 댓글 기능이나 인물의 연관 검색어, 그리고 모바일의 실시간 검색어 기능이 사라진 것은 모두 도 넘은 댓글, 아니 악플들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이런 악플들로 두 명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도 비극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온라인 장이 혐오 표현들로 가득하다는 것의 반증이라 생각한다. 결국 익명의 가면의 뒤에 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자정 작용은 불가능하다 판단한 기업이 (물론 여론의 압력이 있었겠지만) 일종의 규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도 넘은 혐오표현들에 대한 온라인 상의 규제의 첫걸음이겠지만 두 명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야 취해진 조치이니 안일하고도 늦은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3. 그러나 화를 내는 나조차도 이 문제에 떳떳하지는 못하다. 댓글이나 악플을 달지 않는 나는 당장 이 문제에 당장 책임을 면할 수는 있지만, 책에서 지적한 대로 어찌 보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강 건너 불구경 한 '방관자'일지도 모른다. 나 몰라라 식의 제삼자들이 많아질수록 고립되는 것은 혐오주의자들이 아닌 피해자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는 것은, 방관이 아닌 적극적인 저항과 대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왜 이제야 규제했냐고 비난을 하는 것보다 악플을 발견하는 족족 대항하는 것이 방관하지 않는 길이다.


4. 혐오표현의 개념적 규정부터 그로 인한 해악, 유형, 그리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대응 법이나 규제,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책 등 저자 홍성수 님은 혐오표현 전문 연구자답게 깊고 넓게 이 문제에 대해 다룬다. 증오범죄 외에 차별이나 괴롭힘, 편견 조장 등의 혐오표현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께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법은 한계가 있으니 우리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혐오표현과 혐오주의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적인 정의가 바로 대항 표현이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제삼자들의 지지와 연대, 그 집단적 힘의 발휘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어 책을 통해 긴 얘기를 풀어냈으리라 생각한다.


5. 그리고 항상 나를 비롯한 우리가 제삼자 아닌 피해자, 즉 혐오주의자들의 표적집단인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혐오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 모든 혐오표현은 정신적 고통이나 괴롭, 차별, 편견 조장 등의 해악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이든 현실세계에서든, 어떠한 일상에서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지만이 이 빌어먹을 현실을 조금씩이나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다른 내용들을 모두 잊어버려도,  이 핵심적인 깨달음은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




인상적인 문장들


1. 소수자에게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3. 별 근거가 없어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인종차별을 정당화해왔고 여기에 종교, 문화, 과학, 사상 등의 이론적 자원이 계속 공급되면서 더욱 확대, 재생산되어왔다.


4.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개념을 정의해볼 수 있다.


5. 이렇게 편견과 차별의 마음이 표출되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모든 소수자 차별, 혐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6.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인 것이다.


7. 듣는 사람이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타박할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여 발언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


8. "상대방의 말투가 조선족이나 탈북자 느낌이 난다면 되도록 믿지 말고 멀리 떨어지는 것이 당신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  문제는 이렇게 조언이나 정책 제언을 빙자한 혐오표현들이 일견 온건해 보이지만 실제로 더 심각한 해악을 낳을 수 있다.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차별을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9. 많은 연구자들은 편견, 혐오표현, 차별, 증오범죄 등을 하나의 맥락에서 접근한다. 편견의 발현이 표현인지 폭력인지로 갈릴뿐, 그 원인과 배경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10. 혐오표현의 문제에서 저자의 의도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쁜 효과를 낳고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게 된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 우리 영화가 그동안 소수자를 다뤄온 방식이 너무 편의적이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도하지 않는 부정적 효과에 너무 무심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1.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는 표출 형태만 다를 뿐, 원인과 배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대응책도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12. 편견이 혐오로, 혐오가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13.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14. 강남역 사건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여성 혐오와 여성폭력이 만연한 사회 현실에서 발생한 하나의 비극적인 '결과'다.


15. '홀로코스트'는 소수자들에 대한 학살이었던 것이다. (...) 언제든 단계를 뛰어넘어 단숨에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이다.


16. 퀴어문화축제는 혐오에 맞선 '대항운동'의 한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 퀴어문화축제는 축제의 형식을 빌려 성소수자들이 집단적으로 커밍아웃을 감행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성소수자들끼리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를 향해 우리가 여기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 바로 퀴어문화축제다.


17. 미국식 접근. "더 적은 표현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 최고의 복수".


18. 혐오표현이 금지되면 사회의 담론이 합법 표현과 불법 표현으로 (...) 합법, 불법이라는 논점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반사회적으로 비판받던 것들이 '합법이라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엉뚱한 정당화 기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19. 형사범죄화의 의미는 극단적인 형태의 혐오표현 금지와 국가 차원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 정도일 뿐이다.


20. 적극적으로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중립'을 표방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1. 법으로 혐오표현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 사회가 힘을 합쳐서 혐오표현을 고립시켜야 한다.


22. 대항 표현은 말 그대로 혐오표현에 맞대응하는 것이다. (...) 혐오표현의 문제를 법을 통한 금지, 처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다시 맞받아쳐서 그 의미를 전복시키고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대항 표현은 혐오표현 자체를 금지하고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그 해악을 치유해나갈 수 있는 위력적인 방법이다. (...) 결국에는 집단적, 조직적 대응이 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하다. 혐오표현으로 고통받는 당사자 개인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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