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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Apr 06. 2020

생전 읽지 않던 시를 읽었다. 그것도 사랑에 관한 시를

이정하 시인의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1. 낮은 곳으로 中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 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 보내겠다는 뜻이다.


3.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였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해 갈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이야 비켜 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 갈 수 없음을.


4.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5. 판화

너를 새긴다.

더 팔 것도 없는 가슴이지만

시퍼렇게 날이 선 조각칼로

너를 새긴다.


너를 새기며,

날마다 나는 피 흘린다.


6. 욕심 中

삶은 나에게 일러 주었네.

나에게 없는 것을 욕심내기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감사히 여기라는 것을.


삶은 내게 또 일러 주었네.

갖고 있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기를.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외려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7. 나무와 잎새

떨어지는 잎새에게

손 한 번 흔들어 주지 않았다.


나무는 아는 게다.

새로운 삶과 악수하자면

미련 없이 떨궈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길이었다'


- 나태주, 푸른 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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