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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r 22. 2020

[고전작품 리뷰] 시계태엽 오렌지

1. 시계태엽 오렌지를 처음 접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통해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작품으로 스탠리 큐브릭에게 실망한 나는, 딱 한 작품 더 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인지 샤이닝인지 기억이 안 난다)을 봤고 실망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2. 이 책은 비행 청소년의 범죄에 관한 영화다.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저지르는 악랄한 범죄 묘사가 주를 이룬다. 영화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저 놈들을 내가 잡아다가 족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독자 혹은 시청자의 내재된 폭력성을 이끌어낸다 혹은 그것을 부추기는 책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그럼에도 이 책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2부에서 나오는 '국가에 의한 개인 자유의지의 통제'에 관해 다뤘다고 작품 해설은 말한다. 조건반사 기법이라 설명하는 이 세뇌 방식은 아주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강압적으로 반복해 보여주며 그에 따른 주인공의 구토, 메스꺼움 등을 유발하여 폭력적인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굉장히 단편적인 해결 방식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어떠한 사고로 뇌를 다쳐 조건반사 기법으로 학습된 것을 모조리 잊어버린다. 그러니 그 세뇌들은 무용지물인 것이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인데, 주인공이 그토록 보고 구역질과 메스꺼워했던 영화들은 사실 주인공이 교도소에 오기 전에 저질렀던 범죄와 폭력과 비슷하다. 자기가 저지른 짓을 제3자가 되어 보니 토할 것다라니 이런 역설이 없다.


4. 결국 주인공은 자살 시도로 뇌를 다쳐 이전의 잔악함과 폭력성을 되찾게 되고 원래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며 '난 치료되었어.'라고 자기 합리화한다. 세뇌는 말끔하게 잊고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후에 웃기게도 무지막지한 범죄를 저지른 놈인데도 불구하고 멀쩡한 직장을 얻어 돈을 잘 벌고 있으니 환멸 나는 세상이다. 그리고 고작 한다는 것이 다시 새로운 패거리를 모아 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주인공이 뭔가 정상인으로 살아가야겠다 다짐한 지점은, 옛 범죄자 친구 피트를 만나고 서다. 어른스러워지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피트를 보며 주인공의 마음 또한 동요한 것이다. 써놓고 보니 이 작품은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한 건지 모르겠다.


5. 개인적으로 요즈음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태의, 그리고 잔인한 형태의 범죄가 많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n번방의 성착취 범죄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책과 같은 형태의 교화 혹은 세뇌는 그런 범죄자들에게 통하지도 않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평생 사회와 격리시켜놓는 게 답이다. 고로 이 책의 주인공 같은 놈들과 n번방 가해자 및 참여자들 또한 처벌을 받고 격리시키는 게 답이다. 그것도 안된다면 적어도 주홍글씨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범죄자 알리미처럼 매스컴과 언론에서 얼굴과 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6. 시계태엽 오렌지의 뜻이 태엽으로 감겨야지만 움직이는 인형을 뜻하는데 이것이 국가 권력 같은 거대한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통제당하는 개인을 비유했다고 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뜻이다. 그러니 이런 쓸 데 없는 비유보다는 나는 직관적인 제목이 더 좋다.


7. 만약 그런 의도에서 쓴 글이라면 왜 하필 주인공을 범죄 집단 비행 청소년으로 했는지 의문이다. 거대한 권력에 의한 통제라면 국가 권력에 유린당하는 개인의 모습, 그것을 보며 분노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의 일탈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국가 권력이 아닌 개인이 저지른 범죄들에 더 화가 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 권력이 그를 세뇌시키는 교도소에서의 일련의 과정이 그렇게까지 부당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통쾌하다, 저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독자들의 공감을 필요로 했다면 주인공을 범죄자로 설정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8.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심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생각들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교화 이후에도 그는 진심으로 그가 저지른 일들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가 더 이상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구토와 메스꺼움 때문이지 (학습에 의해서) 진심이 담긴 반성과 새롭게 고취된 윤리 의식 때문이 아니다. 때문에 1인칭 시점에서 그 역겨운 생각을 보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래서 1인칭 서술을 택했다면 작가의 연출 의도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할 수 있다. 특히 "밤 시간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거리를 모아야겠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놈들에게 다시 붙잡히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등의 전혀 반성 없이 저지른 짓을 또 똑같이 반복하고 심지어 기만하는 대목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장대호 시점에서 서술된 그의 일기가 생각난다. 무섭도록 설득력이 있어 범죄를 저지른 자신에 대해 이해시킨다. 이 책의 서술법과 비슷한 면이 있다.


9. 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들, 이를 테면 시비 붙어도 싸우지 않고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는 일 등은 모두 위선적이다. 때문에 이런 마음에도 없는, 오히려 정반대 되는 행위를 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국가 권력에 의한 강압적 교화라고 작품은 말한다. 때문에 그는 자유 의지와 본인의 판단에 따라 살아갈 수 없는 더 이상 신의 피조물이 아닌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이나 개, 태엽 달린 오렌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결국 작가는 이 점을 비판하고 싶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재활용 안 되는 인간 폐급 쓰레기들은 더 이상 자유의지를 갖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나는 그 편의 사회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놈들 말이다.


10. 그러니 이 책은 "국가 권력에 의한, 강압적 교화에 의해 바뀐 범죄자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착한 일만 하는 기계인가? 진정으로 갱생된 것일까? 아니면 국가라는 이름을 단 거대하고 합리적인 폭력의 희생양인가?"라는 의문을 남긴다. 폭력으로 왜곡된 자유의지를 왜곡시키는 또 다른 폭력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 책이나 나는 책을 다 읽어도 정답은 모르겠다. 앞으로 고전은 되도록 읽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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